3. 뒷좌석에 늘 짐이 쌓이는 이유

by 유자와 모과

‘어머니 너무 무거워서요. 이건 다음에 가져갈게요. 반찬도 조금만 담아주세요. 그것도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시어머니는 요리를 끝내주게 잘하신다. 시댁에 내려가면 나는 설거지만 하면 된다. 어머님이 미리 음식을 다 만들어 놓으셔서 나와 남편은 최선을 다해 먹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최선’이란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식탁 위엔 갖가지 요리가 동해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음식이 모두 없어지기 전까진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어머님이 챙겨 주시는 온갖 음식을 배낭에 넣어 어깨에 메고 양손에는 꾸러미를 들고 비틀거리며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탄 후 집에 도착하면 힘이 쭉 빠진다. 어깨는 뻐근하고 두 손은 얼얼하다. 어머님은 조금만 가져간다고 섭섭해 하시지만 몸이 너무 힘들기에 다음에 꼭 가져가겠다고 애원할 때가 많다.

하지만 붕붕이를 타고 시댁에 내려가게 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어머니 김치 더 주셔도 되요. 열무김치는 어딨지요? 된장이랑 고추장도 가져갈게요. 매실청이랑 사과청이요? 그럼요. 있으면 먹죠. 다 주세요. 옥상 텃밭에서 고추랑 상추도 따갈게요. 장독대에 있는 굵은 소금 퍼가도 되죠? 혹시 들기름이랑 고춧가루 있으세요?” 우리에겐 차가 있고 트렁크와 뒷좌석에 얼마든지 짐을 실을 수 있다. 이젠 시부모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창고와 냉장고를 샅샅이 뒤져 가져갈 만한 게 있으면 냉큼 차에 실어놓는다. 어머님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허둥지둥 무언가를 숨기려 하시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붕붕이 뒷좌석은 내가 잽싸게 챙겨놓은 맛있는 음식과 다양한 식재료로 가득 찬다. 우리는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사뿐히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차가 있으면 옷차림도 간편해진다. 무거운 코트? 뒷좌석에 놓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꺼내 입으면 된다. 무거운 가방? 뒷좌석에 던져 놓으면 된다. 무거운 우산?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와 도착지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면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친구를 만나거나 일을 처리 할 수 있다. 남편은 나보다 더 차에 무관심한데 일 년에 한 두 번 차가 있으면 편하겠다고 말할 때가 있다. 평일 아침 출근 무렵 폭우가 쏟아질 경우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지름길로 걸어가면 15분, 학의천으로 걸어가면 20분이 걸린다. 워낙 가까운 거리라 카카오 택시가 잡히지도 않고 회사 앞까지 가는 마을 버스도 거의 오지 않는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남편은 파라솔보다 더 큰 우산을 쓰고 회사까지 걸어가는데 회사에 도착하면 구두는 물론 양말, 바지 밑단까지 완전히 젖어 버린다. 젖은 구두는 퇴근할 때까지 마르지도 않는다. 몇 번 낭패를 겪은 후 남편은 맨발에 레인슈즈를 신은 후 바짓단을 접어올리고 비장하게 집을 나선다. 등 뒤에는 구두, 양말, 수건을 넣은 가방을 메고서. 하지만 이젠 차가 있으니 거센 폭우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폭우야 쏟아져라. 붕붕이가 간다.


예전엔 지인들의 차를 얻어 탈 때마다 생각했다. ‘뒷자리에 짐이 왜 이리 많은 거야. 좀 치우지. 지저분하게.’ 이젠 확실히 알겠다. 뒷자리는 원래 짐을 위한 공간이라는 걸. 나는 종종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를 가기에 뒷좌석에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물건이 쌓여 버린다. 마음 같아서는 화분도 놓고 싶고, 드리퍼와 찻잔도 세팅해서 커피도 내려 마시고 싶다. 뒷좌석에 폴딩 매트를 놓아 침실로 꾸미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운전하다 피곤하면 잠시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 누워 휴식을 취하면 좋지 않을까? 운전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점점 자동차가 내 방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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