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믿었던 어른들의 변심

믿었던 어른들의 불신은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을 형성하는데 원인이 되었다

내가 13살 때 있었던 일이다.

집 근처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히 달려가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이 씨 아저씨와 아줌마가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다가가니 말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화가 많이 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심한 욕설을 하고 있었다.

“지금 돈 없어! 내가 나중에 준다고 했잖아…. 다음 달에 줄게요….”

“뭐야! 이놈이 또 거짓말하네…. 한 달이 두 달 되고, 두 달이 세 달 되고 그래! 내 반드시 돈 받아 내고야 만다. 너 고소할 거야.”

“고소? 그래, 고소해라, 고소해!”

3개월 전에도 아버지는 이 씨 아저씨를 법원에 고소한 적이 있었다.

“누구시죠?”

“부산지방법원 000 집행관 입니다. 이00씨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혹시 이호수 씨에게 줄 미수금 350만 원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시죠?”

“오늘 차압 딱지 붙이러 왔습니다. 이호수 씨에게 언제 돈을 주실 겁니까?”

“저기! 잠시만요, 오늘은 제발 붙이지 마세요! 지금 당장 돈을 갚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돈을 갚는다는 조건하에 그냥 가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이 씨 아저씨는 뻔뻔하게 돈을 갚지 않으려 하다가 법원에서 나온 집행관을 보고 겁에 질려 즉시 돈을 뽑아 우리 집에 왔다.

이 씨 아저씨와 아줌마는 억울하다며 현찰 200만 원을 아버지에게 던지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고는 지금 200만 원밖에 없으니 나머지 150만 원은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돈을 주지 않아서 우리 집 앞에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3차 고소를 하여 나머지 돈 150만 원을 다 받아 냈다. 나는 이 씨 아저씨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과거에 아버지와 이 씨 아저씨는 정말 둘도 없는 의형제와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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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한창 사업을 했을 때, 이 씨 아저씨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형님’ ‘형수님’ 하며 싹싹하게 대했다. 그리고 공장에 와서 납과 각종 고철, 비철을 오직 ‘믿음’이라는 보증수표로 외상해 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신 뒤, 사업장을 정리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언제부터인지 외상해 간 값을 갚지 않으려 하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이 씨 아저씨는 외상금 350만 원을 우리 부모님과의 ‘믿음’과 바꾼 것이다. 어찌 사람이 저리 변할 수 있을까…. 어린 나조차도 “돈이 그렇게 좋습니까?”라고 묻고 싶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어른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2018년도 15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이 씨 아저씨는 아직 그곳에 살고 있었다. 멀리서 그를 보았으나 나는 모르는 체했다. 시간이 너무 흘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씨 아저씨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래 전 이 씨 아저씨 내외에 대한 감정은 이미 메말라 버렸다. 특별히 밉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이 씨 아저씨 내외에 대해 잠깐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과거를 회상하며 말문을 여셨다.


“돈 때문에 친가보다 더 두터운 정과 의리를 버렸지…. 돈이 사람을 망쳤다.”

아직도 기억난다. “형님, 형수님!” 하며 웃던 자상한 이 씨 아저씨의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그의 가정과는 길이 너무나 엇갈려 버렸다. 이 씨 아저씨뿐만 아니다. 다른 믿었던 친가와 이웃들…. 모두 돈 때문에 의리를 저버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일찍이 경험했다. 돈 때문에…. 돈이 사람보다 더 중요한가?


이때부터 나는 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우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누나와 형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교 등록금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자존심을 죽이고 담임선생님에게 처지를 말해 등록금의 50%을 면제 받아 부모님의 손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했다. 나 또한 그 모습을 본받아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면제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부모님의 걱정을 덜려고 노력했다.




여기 잠깐!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1. 나에게 신뢰와 배신에 대한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이웃이었던 이 씨 아저씨의 관계를 보며 어른들의 의리와 신뢰를 믿었다. 그러나 이 씨 아저씨가 금전적 이익을 위해 그 신뢰를 저버렸을 때, 처음으로 사회적 신뢰감(social trust)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불신의 발달(development of mistrust)과 관련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중요한 인물에게 배신당한 경험은 성격 형성 과정에서 신뢰의 복잡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2. 단순한 갈등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그 상황을 통해 “돈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인지적 평가(cognitive appraisal)로 설명된다. 특정 사건이 우리의 가치관(values)과 세계관(worldview)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다. 또한, 돈이 신뢰와 관계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나에게 돈과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3. 경제적인 어려움은 우리 가족에게도 심리적 스트레스(psychological stress)를 가져다주었다. 가족 구성원이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전이된다. 나는 부모님의 경제적 어려움을 목격하며,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학비 면제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역할 전환(role reversal)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아이가 부모의 책임을 대신 떠맡으며, 이는 자아 성숙과 책임감 발달에 기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스트레스와 책임감을 아이에게 부여하게 될 수 있다.


4. 나에게 감정의 무뎌짐(emotional desensitization)을 가져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씨 아저씨에 대한 감정은 점차 사라졌다. 이는 심리학에서 감정적 거리두기(emotional detachment)로 설명될 수 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차단하거나 무디게 만들기 마련이다.


5. 끝으로 나는 더 이상 특별한 원망이나 분노를 느끼지 않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깊은 인간관계에서 신뢰감(trust)은 다시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은 내 성격 형성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었다. 돈으로 인해 파괴된 인간관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의 책임감, 그리고 감정의 무뎌짐은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신뢰와 관계에서의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를 통해 나는 어른이 되어도 신뢰의 중요성과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defensive mechanism)를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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