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고 싸우는 거야
어느 날 점심시간, 시선이 느껴졌다. 보통 아이들보다 몸무게가 20kg 더 나가는 현식이라는 아이가 나를 오묘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로 싸울 듯한 분위기였다. 순간 나는 약간 두려움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약주만 하면 노래를 불렀던 아버지의 주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남호! 차렷! 열중쉬엇!”
나는 엄격한 아버지의 구령에 따라 차렷과 열중쉬어를 반복했다.
“편히 쉬어! 남호야, 바로 앉아 봐!”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앉았다.
“남자는 말이야, 배짱이 있어야 해!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남에게 기 죽으면 안 돼. 알았지?”
“응, 근데 아빠! 배짱이 뭐야?”
“배짱? 배짱은 배포지. 아랫배가 아주 빵빵한 거야…. 두려움이 없다는 거지.”
“두려움이 없다는 게 뭐야?”
“겁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고 싸우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하는 거지. 나는 이석연이다! 나는 이남호다!”
“…….”
아버지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아빠는 말이야, 20대 때 아빠보다 덩치 큰, 저 밑에 박 씨 아저씨한테도 박치기 한 방으로 이겼어! 비록 덩치는 작았지만 어느 누구도 아빠한테 함부로 해코지하지 않았어…. 배짱! 남자는 배짱이야! 알겠지….”
“아빠, 박치기가 뭐야?”
“박치기? 김일 선수! 레슬링할 때 머리로 박치기하는 거! 이리 와 봐.”
그러고는 아버지는 내 머리를 박았다.
“아야! 아빠, 아파!”
“이남호! 너 남자가 이렇게 소심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래? 남자는 자신감이 있어야 해! 마음이 강해야 해! 알았지? 당당함이 최고의 재산이다…. 차렷! 열중쉬엇!”
“아빠, 재미없어! 나 안 할래.”
뒤에서 아버지와 나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여보, 그만해요…. 하기 싫다는 거 왜 자꾸 시켜요? 애 기 죽게….”
가을운동회가 끝난 9월, 아이들은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건 현식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오전 쉬는 시간에 여자아이가 실수로 현식이의 옆구리를 살짝 건드리자 그가 근육통으로 무척 고통스러워했던 것이다.
순간, 나는 오늘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오늘이 기회야…. 오늘 저 아이를 깨는 거야. 안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날 무시할 거야. 한판 붙어 볼까? 그래…. 해 보자!’
그리고 다음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일부러 현식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예상대로 현식이는 나를 보며 신경질을 냈다.
“야! 뭘 봐? 저리 안 가?”
“…….”
“야…. 이남호, 안 꺼져? 4학년한테 깨진 놈이….”
“뭐…?”
현식이는 비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현식이의 옆구리와 허벅지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박치기를 했다.
그리고 현식이는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은 내 행동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일로 인해 나는 현식이와 절친이 되었고, 어느 누구도 내게 함부로 말하거나 나를 놀리지 않았다.
이 경험은 나에게 자존감과 사회적 위치를 확보하는 방법에 대한 강렬한 교훈을 주었다. 당시 나는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서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으며, 그것이 곧 자존감과 연결된다고 믿었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나에게 '배짱'과 '두려움 없는 행동'이 자존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으며,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었다.
여기잠깐! 심리학적으로 마무리를 하며
심리학적으로 보면, 내가 현식에게 한 행동은 심리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 하나인 행동화(acting out)로 설명될 수 있다. 행동화는 억눌린 감정이나 불안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나는 두려움과 불안을 감지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감정을 억누르고 행동으로 표출하면서 내 자존감을 보호하려고 했다. 이것은 즉각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었지만, 그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내면의 불안과 자기 의심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아버지의 말은 남성성의 사회적 규범을 심어주었고, 훗날 나는 그 규범에 따라 행동했다. 사회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규범을 사회적 역할(social roles)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때 남성성이라는 틀에 맞추어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고, 일시적인 권력과 지위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남들이 인정하는 힘이나 두려움을 숨기는 것이 진정한 자존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