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발표 PTSD : 떨림증 경험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내성적과 소극적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ㄱ가졌다

어느 날, 국어 수업 시간 때 있었던 일이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참여식’ 수업을 선호하셨다. 그래서 항상 발표를 많이 시켰다. 특히 말을 잘하는 아이들보다는 평소 발표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먼저 참여시킨 후 적극적인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셨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지목하며 국어 교과서의 문장을 읽으라고 하셨다.

“자, 남호가 이 부분을 읽어 볼까?”

“…….”


극도로 긴장한 나는 떨리는 목소리부정확한 발음,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발성으로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개성이 뚜렷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친구 병관이가 나를 삿대질하며 큰 소리로 세 번 웃었다.

“하~~ 하~~ 하~~”

(여기서 말하지만, 병관이의 개성은 천천히 딱 세 번 웃는 것이다. 웬만한 뱃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며, 용기와 배짱이 없으면 따라 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그를 ‘배짱 친구’라고 불렀다. 병관이는 왜 내가 변화해야 하는지 깨우치게 만든 친구이기도 했다. 그를 증오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더욱 찾게 되었다. 나는 그가 한국 최초로 웃음학을 창시했다고 웃으며 농담하곤 한다. 10년 후, 내가 새롭게 변화한 이유도 그의 영향이 컸다. 지금도 그와 연락을 하고 있지만 (현재 그는 해외에 있다) 아직도 그 열정과 적극성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병관이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이 나올 테니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란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병관이의 표정과 웃음소리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내게 알리는 바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내가 얼마나 국어 교과서를 재미있게 더듬더듬 읽고, 두려움과 나약함에 질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그리고 얼마나 답답하게 보이는지…. 당시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순간, 반 전체가 교실이 떠나가라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자, 자, 그만! 모두 조용! 친구가 힘들게 글을 읽고 있는데 웃으면 안 돼.

남호는 수고했어, 자리에 앉아도 돼.”

“…….”


나는 자리에 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터질 듯 갑갑하고, 명치와 심장 쪽에 무언가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화병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마 이때부터 나는 아주 심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안기 시작했을 것이다. 흉식호흡을 가장 많이 사용한 시기이기도 하다. 보통 고등학생 때 입시 스트레스로 복식호흡에서 흉식호흡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흉식호흡을 시작한 셈이니…. 그야말로 애늙은이인 셈이다.

“병용아, 너 조용하고 말이 없는 걸 뭐라고 하는지 아니?”

“조용하고 말이 없는 거? 글쎄…. 아~ 맞다, 그걸 내성적이라고 말하더라.”

“내성적? 그게 국어사전에 있어?”

“응, 아마 있을 거야…. 또 비슷하게 소극적이라는 단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나는 ‘내성적’과 ‘소극적’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발표 때마다 찾아오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었다. 나는 국어 시간에 발표를 하다가 웃음을 샀던 이후로 아이들의 시선과 관심을 견디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온 걸까? 나는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대며 힘들어했다.

나는 곧장 집에 가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정말 ‘내성적’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순진하게도, 나는 사전에 ‘내성적인 사고방식을 변화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나와 있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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