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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Jan 27. 2024

<제11화> 눈치밥

자기표현만 잘 해도 소원이 없겠다

<1부에 이어서 2부 시작합니다.>


다음 날 아침 자습시간, 노트에 글을 쓰다가 실수로 틀린 부분이 있어 미혜에게 지우개를 빌리려 했다. 하지만 어제의 일 때문에 말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빌릴까 생각하다가 옆을 봤는데 병관이가 있었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또 나를 보고 삿대질하며 세 번 웃으면 어쩌지? 그러면 또 다른 아이들이 웃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만약 병관이에게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말했다면 그는 시원스럽게 빌려주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의 웃음소리가 정말 부담스러웠다. 선천적으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병관이는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는 그런 그가 항상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그를 시기 질투하기도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뒷자리에 앉아 있는 순덕이에게 지우개를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아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갑자기 순덕이가 내 등을 두드렸다.     

“남호야, 너 지우개 빌려달라고 아까부터 계속 뒤돌아본 거지?”

“…어어.”     


내가 머쓱하게 웃자 순덕이가 지우개를 내밀었다.     

“자, 이거 써! 그리고 남호야, 이제 눈치 보지 마! 당당하게 빌려달라고 말해. 알았지?”

“어, 그래…. 고마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욱 소심해졌다. 발표할 때는 물론, 청소 시간이나 학급회의 시간, 조별 수업 시간에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5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리 심하지 않았던 나의 태도와 사고는 산수시간 사건, 크레파스 사건, 점심시간 사건 이후로 점점 심해졌다. 나는 거리에서 같은 반 아이를 만나도 상대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한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당당하게 말도 걸고 함께 장난도 치고 싶었다.     


당시 내 소망은 단순하고 작은 것이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웃고 싶으면 웃고,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고, 희로애락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감정을 숨기고, 다른 모습으로 표현했다. 실제로는 마음이 약하고 여리지만 겉으로는 강한 척, 활발한 척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차라리 친구를 얻지 못하더라도 외로움과 고독을 선택하는 편이 나았다.     

궁금했다. 내 마음이 왜 이러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가정 때문인지, 어른 때문인지, 친가 때문인지…. 속 시원하게 누군가 말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미 문제점을 아무도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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