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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Feb 02. 2024

<제17화> 새벽, 박스 아저씨

지금껏 살아 오면서 나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새벽, 나는 여전히  신문 배달을 하기 위해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신문사로 가고 있었다그때 한 남자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 !! 우우~!!”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나는 신기해하며 거리에서 만난 신문사 동료 친구에게 저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았다친구는 우리 동네에서 박스, 종이, 음료수 캔을 수거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아저씨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 날씨를 잘 맞추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나는 친구보고 그럼 한 번 날씨를 물어보라고 말했다.     

“아저씨! 오늘 날씨 좋아요? 비 오나요?”

“오늘?”

“네.”

그는 흰 눈동자가 보이게끔 하늘을 쳐다보면서 약간 무섭게 큰소리로 무슨 염불 비슷한 말을 외치기 시작했다.

“우! 우! 우우~~!! 우! 우! 우우~~!!”


마치 신들린 무속인처럼 하늘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알았다는 듯이 갑자기 빵긋 웃고는 답해 주었다. 우리는 숨 죽이며 쳐다보고만 있었다.

“오늘 비 온다…!! 비 와!!!!”

“정말요?”

“비 와!! 오늘 비 온다!!”     

나는 신기해서 하늘만 계속 쳐다보았다. 감천문화마을 달동네 겨울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찼고, 초승달도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비가 올까 싶어 아저씨의 말을 믿지 못하자, 친구는 정확하다며 믿어 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정말 비가 왔다. 나는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했고, 어머니는 그가 약간 정신 장애가 있지만 늘 밝게 웃고 성실하다며 이 일을 한 지 10년 이상 됐다고 말했다. 그 이후 나는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날씨를 꼭 물어보았다. 가끔은 새벽이 정말 고요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아저씨의 염불 소리가 매우 커서 민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나는 아저씨에게 오늘 날씨가 어떻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눈빛과 목소리로 친절하게 나에게 날씨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때 나의 머리 뚜껑이 뻥! 열리면서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래! 새벽에 훈련하는 거야! 그리고 미치는 거야! 미친 사람은 늘 행복하잖아? 나도 변화하기 위해 미치면 행복할 거야!’

당시 나는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바로 책에서 나온 야외(길거리) 스피치 훈련 알버트 엘리스의 수치심깨트리가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 훈련을 새벽에 하면 더욱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박스 아저씨의 영향이 매우 컸다. 이 방법이 좋든 안 좋든 그냥 하고 싶었다. 야외 스피치란 말 그대로 야외에서 즉, 길거리, 산, 공원, 시내 중심가에서 자기암시 대본을 암기 하여 대중 연설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는 1인 다역으로 모노드라마 훈련도 하며 그외 역할극 훈련도 있. 훈련을 하다보면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가끔 아는 사람을 만나면 매우 어색하고 부끄럽다고 한다그리고 이것은 엄청난 배짱과 용감성이 필요하다아무리 좋은 강사의 강의를 들어도 혼자서 하기에게는 한계가 있다물론 독학으로는 더욱더 힘들다.     


  머릿속에서는 가능하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주위 환경에 따라 거의 99% 실패한다. 또한 주위 장애물로 인해 당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다음에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는 공포심이 더욱 상승하여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독학으로 할 자신이 없어서 시내의 학원에 등록하려 했다. 그러나 경제적 부담이 커 그냥 책을 읽으면서 독학으로 훈련하자고 결심했다. 만약 내가 집이 잘 살고, 경제적으로 큰 걱정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에서 성격 혁신에 관한 프로그램을 모두 수강했을 것이다. 당시는 3월이라 새벽 5시만 되어도 깜깜했다. 나는 이런 환경을 이용해 일단 점진적노출 훈련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성공학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자신 있게 부르는 것도 자신의 가치관을 높이고 자신감을 기르는 데 좋다고 본다는 것을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면서 나의 이름을 한 번 불러 보자고 생각했다. 마치 박스 아저씨처럼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금껏 살아 오면서 나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불러 본 적이 없었고, 또는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칭찬해 주는 것도 들어 본 적이 없어 매우 어색했다. 드디어 나는 날짜를 정해 놓고적당한 장소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기로 결심했다막상 이름 석 자를 부르려고 하니 내 이름이 세상에 알려져 TV에도 나올 거 같고경찰서에도 퍼질 거 같고학교에도 퍼질 거 같아 두려웠다나는 용기를 내서 실천해 보았다.     

“이… 이… 이… 남, 호~!”     

생각보다 ‘이’자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생애 이름 석 자 부르는 게 이렇게 떨릴 줄은 몰랐다. 나의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계속 기어들어 갔고, 뇌에서는 이런 행동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입김만 나오게끔 “이. 남. 호”라고 외쳤다. 그렇게 나는 2주 정도 노력했지만, 한 번도 속 시원하게 이름 석 자를 부르지 못했다. 그날 저녁 TV에서는 지난 87년 13대 대통령 선거 운동 당시, 대통령 후보들의 연설 동영상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 김영삼은!” 

“나 김대중은!” 

“나 노태우는!”     


그들의 시원한 연설을 보면서 나는 부러웠다. 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면 떨리지 않을까나도 저렇게 멋지게 하는 날이 과연 올까나도 속 시원하게 저 사람들처럼 마음껏 목청을 터트리고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엔 무언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기운이 없는 느낌만 들었다.      



<여기잠깐! 생각해봅시다.>   

  알버트 엘리스는 1968년에 수치심을 깨트리는 행동 방법 shame-attacking 기법을 개발했다.

앨버트 엘리스 (Albert Ellis, 1913년 9월 27일 ~ 2007년 7월 24일)는 1955년에 합리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 : REBT)를 개발한 미국 심리학자이다. 

 이 방법은 개인이 자유와 자발성을 억압하는 자신의 무언의 규칙을 깨뜨리고 공공 장소에서 그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통해 수치심, 자기 의식, 사회적 불안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엘리스와 그의 동료들은 이 기법을 정기적으로 실천하고 환자들에게 처방하여, 이러한 억압적인 규칙이 우리의 안전과 웰빙에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기법은 대중 앞에서,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있어 억압적인 규칙에 반하여 행동함으로써 수치심에 공격한다. 예를 들어, 붐비는 상점에 들어가서 크고 분명하게 시간을 알리는 행위를 하거나 긴 빨간 목줄에 바나나를 묶어 인도를 걷다가 가끔 멈춰서 바나나를 쓰다듬고 칭찬하는 행위 등이 있다. 알버트 엘리스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자신의 수치심을 극복하고 더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또한, 알버트 엘리스는 자신의 수줍음과 여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19살에 독특한 자기 실험을 했다. 그는 사회관계에서 수줍음이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직접 경험하기로 마음 먹었다. 엘리스는 한 달 동안 브롱크스 식물원에서 혼자 앉아 있는 여성들에게 다가가서 훈련 했다. 그의 목표는 데이트를 얻는 것이 아니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감정, 신체, 반응으로 느끼기 위해 훈련을 한 것이었다. 당시 130명의 여성 중 30명이 걸어가버렸지만, 그 중 100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과 데이트 약속에 성공하였으나 얼마가지 못해 헤어졌다. 엘리스는 이 경험을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이것은 개인적 발전뿐만 아니라 나중에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REBT)의 중심 기술이 될 기법을 형성하는 데에도 결정적이었다. 알버트 엘리스는 이 접근법을 통해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에피소드는 노출 훈법비합리적 신념에 도전하는 것의 힘을 강조한다. 엘리스의 훈련은 거절 자체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에 대해 가진 신념이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신념을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개인은 감정적 고통을 줄이고 더 충만한 삶을 이끌 수 있음을 배울 수 있다. 엘리스의 경험과 REBT의 개발은 심리치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개인이 자신의 두려움과 비합리적 신념에 도전하고 극복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전략을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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