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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Feb 03. 2024

<제18화> 14살, 한 풀이

지나친 소심증은 정신병이야!

한(恨)은 과거 70~80년대 여성들에게 많고, 특히 결혼을 하면서부터 여러 가지 갈등으로 많이 생기는 한국인의 고질적인 마음의 병이다. 일종의 화병이다. 그런데 나는 어린 나이인 14살에 마음의 한(恨)이 찾아왔다. 새벽에 내 이름 석 자를 힘차게 부르려고 해도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정말 나 이남호라는 존재는 운명론을 인정해야 할 팔자인가? 성공학에 의하면 운명은 바뀔 수도 있다고 하던데, 현실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매일 새벽에 훈련을 시도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모기 목소리처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가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어른들이 내 주위를 지나가거나 문 밖에 서 있으면, 나는 훈련을 하려고 나왔다가 그들을 보고 겁에 질려 그냥 지나친 적이 많았다. 왜냐하면 혹시나 나보고 ‘미친 녀석’이라고 화를 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남들보다 등교를 늦게 했다그런데 어느 날이상하게 한 아이가 기분 나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그는 얼굴 피부가 새까맣고입술이 두꺼우며단단한 몸매를 가진 아이였다. 학교 성적은 중하위권이고 싸움은 보통이었다키와 덩치는 나와 비슷했다. 이날 4교시 수업은 체육 시간이었는데, 그날은 특별히 축구 시합을 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남들 하는 만큼 경기에 참여하여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오전부터 나를 심상치 않게 쳐다보았던 그 녀석이 나에게 오더니 일부러 발을 걸었다. 나는 그대로 땅에 넘어졌고, 팔과 옆구리가 긁혀 벌겋게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가벼운 부상이었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멀리서 나를 보고 흰 치아를 드러내며 비웃고 있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과거의 반장 사건과 돗자리 사건이 떠오르며 머릿속에서 강력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만약에 당신이 지금처럼 이대로 산다면 당신은 10년, 20년 후에도 지금처럼 똑같은 인생을 살 것이다. 용기를 내서 과감히 부딪쳐라! 피하면 당신은 또 똑같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책에서 본 구절이다. 순간 화가 났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곧장 달려가서 사람을 넘어트렸으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따졌다. 그는 비웃으며 나의 말을 무시한 채 축구에만 몰입했다. 순간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아무도 나의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는 반에서 적극적인 성격의 아이들과 친했다. 나는 축구를 중단한 채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두 눈이 뒤집힌 채 손과 발로 그의 책상을 완전히 엎어 버렸다. 책상 안에서 튕겨 나온 공책과 책들은 땅바닥에 흩어졌다.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뒷일은 어떻게 될지 걱정도 안 한 채 밖으로 나와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아~!”

      

순간 아이들과 선생님은 깜짝 놀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수업 종이 쳤고,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상처 난 팔과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양호실에 갔다. 치료를 마친 뒤 교실에 돌아왔는데 나의 책상이 똑같이 엎어져 있었다.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가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이렇게 자기표현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날 밤 나는 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오늘 사건을 계기로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내일은 반드시 새벽에 나의 이름 석 자를 힘차게 부르기로 결심하며 잠을 설쳤다.  

      

 '그래! 불러 보자! 나의 이름, 이. 남. 호!'     


새벽의 고요함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들리는 나의 숨소리는 커다란 진동 같았다. 첫 집에 신문을 넣고 30분 정도 이동하면 마을 꼭대기에 일반 가정집과 붙어 있는 작은 사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높은 고지대 지역이라 작은 소리를 내도 메아리는 저 멀리 퍼져나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그만큼 고요했다. 나는 사찰에 신문을 넣고 계단에 서서 2주 동안 실패했던 일과 어제 있었던 체육 시간 사건을 떠올리며 망설이다가 힘차게 말문을 터트렸다. 

    

“이~ 남~ 호~~!!”

메아리가 울렸다.

“이~ 남~ 호~~!!”     


목소리는 새벽의 고요함을 타고 저 멀리 펴져 나갔다가 다시에 나의 귓가에 돌아왔다. 생각 외로 쉽게 말문이 터져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먼바다를 쳐다보면서 미래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젠 더 이상 소극적으로 답답하게 살지 않을 거야! 지나친 소심증정신병이야!’      


다음 날에도 어제의 성공을 기억하며 말문을 터트렸다. 물론 두렵기도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오직 변화의 확고한 신념만 성립된 상태였다. 그때 사찰에서 주지스님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에게 목례한 후 자리를 피하면서 다짐했다. 

 ‘언제쯤 내가 원하는 변화에 성공해서 이런 걱정 안 하고 편안하게 살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새벽의 힘을 이용해 나의 이름을 힘차게 불렀다. 그때 사찰 앞 한 가정집에서 불이 켜졌고, 50대 중년 남성이 창문을 열며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어느 미친놈이 새벽에 고함을 질러? 누구야! 죽을래?”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피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의 몸은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바로 뛰어나올 거 같은 공포심으로 땅에 놓은 신문 뭉치를 빨리 챙겨 줄행랑을 쳤다.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지 한참을 뛰다 보니 다음 집을 지나쳤다. 나는 숨을 헉헉거리며 소리쳤다. 

     

“헉헉! 아~ 큰일 날 뻔했다. 진짜 떨리네. 와~ 하하하하하하!”       

        

이.남.호! 넌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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