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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Feb 04. 2024

<제19화> 16개월, 옹알이 연습

내 생애 가장 큰 성공 경험이자 비극을 경험한 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14년 만에 큰 소리로 나의 이름을 시원하게 외친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부터 좀 더 체계적이고 점진적으로 훈련할 계획을 세웠다. 먼저 메아리 울리기 좋은 장소를 몇 군데 정해 놓았다. 그리고 한 달 즈음 되었을 때부터 이름에 단어를 붙여 말하는 길이를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예를 들면단어를 늘려 문장으로 만들었다시작한 지 100일이 되었을 때 나는 단어가 아닌 문단을 만들기로 했다이것은 훗날 A4 용지 2장으로 만든 자기 암시다나는 이것을 암기하여 남포동서면해운대 백사장광안리 백사장에서 미친 듯이 반복 훈련하여 마음속에 새겼다. 


..! + 파이팅

..! + +할 수 있어!

.남.! + 까짓것도전해 보자! + 실패해도 좋아!   

  

이런 식으로 이남호, 넌 할 수 있어! 넌 멋져! 넌 vip야! 넌 이 세상에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가장 고귀한 사람이야! 남호야! 해 보자! 도전해 보자! 까짓것! 실컷 떨고 노출해 보자! 자기 노출은 좋은 거다. 노출을 해야만 강력한 정신력이 생긴다. 남들이 너보고 못한다고 해도 신경 꺼라! 그 말에 휘둘리지 말고 당차게 자기 표현을 해라! 욕 좀 먹어도 좋다. 그동안 나는 너무 착하게 살아 왔다. 남호야! 왜 못해! 내가 왜 못해! 나도 할 수 있어.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지 계속 반복하다 보면 좋아져! 

         

특히, 내가 자주 애용했던 문구는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명언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모든 운명이 바뀐다.//”  (계속 무한 반복)    


  나는 진정으로 바라는 문구들을 찾으려고 애썼다. 특히, 자신감, 긍정,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문구를 원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고 설레는 문구를 찾아 글로 적으면서 조금씩 양을 늘렸다. “이남호 넌! 반드시 변화할 수 있어! 넌 언젠간 꼭 해낼 것이다.” 처음엔 말의 억양도 어색하고 꼭 책 읽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100일, 200일, 계속적으로 반복할수록 억양, 리듬, 악센트가 다듬어졌고 1년 4개월이 지났을 때쯤에는 나의 목소리에 공명과 힘이 느껴졌다. 당시 친구들은 수업을 마친 후 단과학원에 갔다. 하지만 나는 시내 남포동 서점의 처세술 코너에서 성공학에 관한 책을 읽었다. 특히 잠재의식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이유는 뇌리에 부정적인 암시가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임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생이라 돈이 없어서 책만 읽고 돌아왔다. 당시 남포문고 점장(사장)님은 나를 오래전부터 관찰해 왔고, 나도 그걸 느꼈다. 아마 내가 책을 훔치거나 또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할까 봐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지났을 때 그는 나에게 한마디 했다. 

    

“이봐, 학생! 책 안 살 거지? 안 살 거면 나가! 왜 자꾸 와서 책도 안 사고 빈둥거려?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 여기 오면 어떻게 하니? 넌 학원도 안 가니?”     

나는 한소리 듣고 서점에서 빠져나와 용두산 40계단에 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다시 서점에 가서 점장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책을 읽었다. 26년이 지난 2016년 겨울 어느 날, 나는 남포문고에서 책을 사기 위해 베스트셀러 코너에 서 있었다. 그때 한 남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남포문고 점장(사장)이었다.            

“혹시, 예전에 남포문고에 자주 왔던 학생 아닌가요? 맞죠?”

“아, 네. 맞아요. 하하하. 안녕하세요.”

“세상에! 이젠 학생이 아니시네요. 어른이 다 됐네요. 시간이 한참 지났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일을 하시나요?”

“네, 스피치 리더십 강사로 활동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중학생 빡빡머리 때부터 제가 본 거 같은데 그땐 항상 처세술 코너에서만 책을 읽어서 솔직히 좀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결국 이 길로 한 우물 팠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참, 세월이 빠르네요.”          






  1990년 4월 어느 날, 새벽에 메아리 울리기 훈련을 한 지가 1년이 지났을 때 즈음, 나는 책 속에 나온 길거리 실전 훈련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말하는 실전이란 바로 낮에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장소을 말한다. 이것을 해야 진정으로 자신감도 생기고 훈련할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했던 훈련은 일종의 옹알이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한 훈련 장소는 모교 앞 버스 정류소였다. 이곳은 토요일만 되면 학생들과 어른들로 붐볐다. 당시 내가 다녔던 중학교 근처에는 4개의 학교가 더 있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1시 15분쯤 되면 학생과 어른들이 순식간에 버스 정류소에 모여들었다. 인원수만 대략 150~200명 정도 된다. 나는 이곳을 첫 스피치 훈련 장소로 선택했고, 매주 토요일만 되면 일부러 빨리 와서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탐사했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서 멋지고 당당하게 대중 스피치 훈련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훈련하는 상상만 해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손과 다리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리며 현기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는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굳이 이 성격을 바꿔서 뭘 하겠는가? 그러나 성공한다면 정말 행복할 거 같았다. ‘이것보다 통쾌하고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에 훈련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실전 훈련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나는 훈련 장소를 100일간 탐사했다

그리고 대중 스피치를 할 대본을 짜서 암기하고 반복 연습했다

마침내 나는 훈련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1990년 7월 14일 토요일 1시 15분’          

나는 일주일 전부터 친한 친구 몇 명에게 훈련 날짜와 시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당일이 되었을 때 친구에게 오늘 실전 훈련을 할 거니까 보고 싶으면 학교 밑 버스 정류소로 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콧방귀를 뀌며 그런 미친 짓을 왜 하냐고 말리며 웃었다. 훈련 당일 새벽 5시, 나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평소보다 더 강하고 절도 있게 메아리를 울렸다.          

“이남호! 오늘 반드시 멋지게 실전 훈련할 수 있다!!!”     


그리고 한 소리 들었지만 말이다.     

“어느 미친놈이 새벽마다 소리를 질려! 너 잡히면 죽는다!!”          

나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친구 한 명과 버스 정류소로 뛰어갔다. 아직 학생들은 내려오지 않았다, 약 10분 후 저 멀리서 여중생과 고등학생들이 까르르 웃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몇 명 보였다. 순식간에 정류소에는 학생과 어른들로 가득 찼고, 나의 심장은 터질 듯 호흡이 빨라졌다. 손과 다리가 벌벌 떨리기 시작했고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순간 후회되었다. 괜히 친구에게 훈련을 한다고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하지 않으면 앞으로 영영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떨림을 즐겨라! 떨림을 사랑해라!’          

책 속에 나온 문구를 떠올리면서 두 눈을 딱 감고 외쳤다.

“에라이, 모르겠다!”     

“남호야! 이~ 남~ 호!!”

“…….”



오늘 이 순간은 내 생애 가장 큰 성공 경험이자 비극을 경험하게 된 일이 되었다


순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했다.          

“부산시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성격이 소심하고 심하게 내성적이라서 항상 남에게 손해를 보고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용기를 내어 자신감을 기르고 성격을 변화시키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최소한의 할 말은 하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따질 것도 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에게 용기의 박수를 쳐 주시면 고맙습니다. 꼭 노력하여 변화하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순간, 환호가 들렸다.          

와! 멋지다! 대단하다! 오빠! 앙코르!          

그리고 누군가가 먼저 박수를 쳤고, 파도타기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손뼉을 쳤다.

“와~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나는  마무리 인사를 하며 친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툭! 쳤다. 나는 흥분된 마음으로 뒤돌아보면서 외쳤다.      

어디 갔었어?”      

하지만 그는 친구가 아니라 덩치가 큰 사회 선생님인 핵주먹’ 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명찰을 꺼내 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2학년 2반 34번. 이남호! 너 월요일 3교시 끝나고 남자 선생님 휴게실로 오렴.”     

선생님은 말 한마디만 한 채 사라졌다. 그리고 저 멀리서 친구가 이름을 불렀다.     


“남호야?”

“응. 너 어디 갔었어?”

“핵주먹 뭐래?”

“응, 나한테 월요일에 남자 선생님 휴게실로 오라고 하던데….”

“왜? 왜 오라는 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선생님 표정 봐서는 칭찬하려는 거 같은데. 혹시 선물 주려고 하나? 하하하!”

“그래? 야! 너 좋겠다. 그리고 오늘 진짜 대단하고 멋졌어! 다시 봤다~”

“진짜? 대단하게 보였어? 나도 믿기지 않아! 그런데 너 아까 어디 갔었어? 찾아도 안 보이던데.”

“말도 마! 쪽팔려서 구석에 숨어서 너 훈련하는 거 봤어. 너 완전 미친 거 같아.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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