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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Feb 05. 2024

<제20화> 방해요소1 : 사이비 종교단이 시켰니?

성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에 한탄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의 능력을 확인한 첫 대중 스피치 훈련, 성공! 흥분된 마음으로 주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토요일에 만났던 사회 선생님의 말 한마디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월요일에 남자 휴게실에 오라고 했을까?’ 


마치 소풍 가기 하루 전날에 설레서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이틀 후 당일, 나는 처음으로 남자 선생님 휴게실의 문을 두드렸다. 사회 선생님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막 줄담배를 하려는 차에 나를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무슨 일일까? 무엇 때문에 날 불렀을까?’  

 

그는 미닫이로 된 문을 닫고 왼손에 차고 있던 시계줄을 풀며, 양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회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부드러운 톤으로 말했다.


소심한 사람이 그런 용기가 어떻게 생기냐고? 보통 사람들은 꿈조차 못 꾸는데….


“2학년 2반 34번 이남호 맞지? 

“네….

너 토요일 버스 정류소에서 무슨 연설 같은 거 하던데, 왜 했지?”

“아네, 제가 성격이 무척 소심해서… 성격 고치려고 훈련을 했어요….”

“훈련? 네가 성격이 많이 소심한가 봐.”

“네…. 많이 소심한 편이에요….”

“그런데… 남호야? 소심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미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예?” 나는 당황했다.

소심한 사람이 그런 용기가 어떻게 생기냐고? 보통 사람들은 조차 못 꾸는데….”

“아… 네…. 하하. 사실은 제가 1년 4개월 동안 아침에 신문 배달하면서 조금씩 연습했어요. 그러다가 실전 훈련은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해야 훈련 효과도 나고 자신감도 생긴다고 해서 토요일 처음으로 용기 내서 한 거예요. 하하.”

“그래…?”

“네….”

“그런데 남호야! 지금 네가 말한 것을 선생님이 믿어야 할까?”

“네?”


나는 직감했다.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고, 선생님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치 순식간에 먹구름처럼 몰려오는 듯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야, 인마! 이남호, 너 이 새끼!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 세상에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행동을 할 수 있어? 이 미친놈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지나가는 개한테 물어봐도 넌 정상이 아니야. 그리고 남호야, 사람 성격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누가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어?”

“그건 저도 알지만…. 제가 성격을 너무 바꾸고 싶어서… 이 훈련을….”

“야, 어디서 말대꾸야! 너 이리 와! 이 새끼가….”


그는 내가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흥분하여 커다란 주먹으로 나의 머리와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순간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지금 이 상황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맞아서 아픈 것보다는 지금 일어난 일이 중학생 2학년으로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런 훈련 안 할게요!!”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이 닳도록 빌었다. 그때 교사 휴게실과 연결된 교무실에서 나의 소리를 듣고 선생님들이 몰려왔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 남호야. 너 토요일에 정말 그런 엄청난 일을 했니? 왜 그런 행동을 했니? 혹시 너 사이비 종교 같은 곳에서 누가 시킨 거 아니니? 솔직히 말해 보렴.”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왜 이 아이가 여기서 울고 있나요?”

“아, 네, 교무 선생님. 이 녀석이 토요일에 학교 밑 버스 정류소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200~300명이 모였는데요. 아 글쎄, 이 새끼가 그 많은 사람 앞에서 혼자서 성격 바꾸겠다고 큰 소리로 지랄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직접 두 눈으로 보았어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이 새끼 완전 미친놈입니다. 허허허. 세상에 이런 미친놈 처음 보네요. 무슨 조치를 해야지!!


무슨 조치를 해야겠다는 말에 나는 더욱 겁이 나서 큰 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선생님,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할게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교무 선생님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나의 명찰을 보고 말했다.

“그래, 남호야. 너 토요일에 정말 그런 엄청난 일을 했니? 왜 그런 행동을 했니? 혹시 너 사이비 종교 같은 곳에서 누가 시킨 거 아니니? 솔직히 말해 보렴.”

“아니에요. 전 그냥 책 보고 따라 한 거예요. 제가 성격이 너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변화하고 싶었어요.”

“책? 그 책 지금 교실에 있니?”

“네, 있어요!”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빨리 가지고 오렴.”


나는 벌겋게 타오른 양 뺨과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재빨리 교실에 뛰어가서 형이 준 책을 가지고 왔다.

교무 선생님과 사회 선생님은 책을 펼쳐 보았다. 그리고 주위에 다른 선생님들도 호기심으로 책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교무 선생님은 꼼꼼히 책장을 넘기다가 생각에 잠기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래, 이 책을 보고 따라 했단 말이지?”

“네.”

“흠.”


그는 책 속에 나온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성격 개선, 자신감 상승, 발표 불안증 극복을 위해 나처럼 길거리 훈련, 알버트 엘리스의 수치심깨트리기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헛기침을 했다.


“남호야. 다음부터는 토요일에 했던 그런 행동은 다시는 하지 말거라. 알았지?”

“네, 선생님, 다시는 안 할게요.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요!”

“그래.”

교무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은 휴게실에서 모두 빠져나갔다.

남자 휴게실 안에는 사회 선생님과 나만 남겨졌다. 선생님은 책을 다시 보더니 무엇에 화가 난 건지 갑자기 책을 들고 문쪽으로 집어 던졌다.


“미친놈! 야, 너 한 번만 더 그런 행동 하다가 나한테 걸리면, 내가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알았어?”

“네, 선생님 다시는 안 할게요. 잘못했어요!”

“꺼져!”


나는 땅바닥 구석에 떨어진 책을 집고, 휴게실에서 약 20분 만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세수를 하며 성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에 한탄했다. 억울했다. 나는 왜 성격을 변화시키고 싶어도 

어른들에게 가로막힌단 말인가? 정말 성격은 바꾸는 게 아니란 말인가?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에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남들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답답하고 싫었다. 훗날 20년, 30년 후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처럼 이런 삶을 살까 봐 두려웠다.


나도 다른 아이처럼 성격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고 싶고, 학업에 몰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 내 마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아니, 최소한의 감정만이라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는 것에, 아니, 이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그리고 그동안 노력했던 새벽의 점진적 훈련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생각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찌나 서럽고 눈물이 많이 나왔는지, 15년 동안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었다. 나는 밖에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물을 틀고 손으로 입을 막고 울었다. 10분 후 정신을 차리고 교실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반 친구들은 퉁퉁 부은 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며 서로 소곤거렸다. 이미 반 안에 소문이 퍼졌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지? 앞으로 훈련하면 사회 선생님이 날 가만 안 둘 텐데 이대로 포기해야 되는가? 여기서 나의 성격 변화 시도는 끝이구나. 억울하다. 나는 평생 이대로 소심하고 바보처럼 살아야 하는 팔자구나. 나는 운명론을 인정해야 하는 건가? 친구들에게 큰 소리 뻥뻥 쳤고, 집에도 말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지?’


그날 오후, 마지막 수업인 수학 시간 때 앞문으로 누군가가 찾아와 나를 호출했다.

“이남호? 복도에 잠시 나가 보렴. 사회 선생님이 너 찾는다.”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사회 선생님이 왜 날 찾을까? 혹시 훈련하는 거 허락하려고 하는 건가?’ 나는 한편으로는 작은 희망을 갖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그러나 사회 선생님은 나를 복도 모퉁이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주먹으로 나의 머리를 천천히 한 대씩 내려치면서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이남호. 너, 또 한 번 그런 미친 행동 하다가 나한테 걸리면 내가 반드시, 널 가만 안 두지 않을 거야! 알았어?”

“네.”

“그래. 들어가.”


25년이 지난 2016년 어느 날, 나는 맞벌이 부부인 막내 누나 대신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의 학교에 ‘학부모 초청’ 강의에 대신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스피치 리더십 강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했다. 그리고 강사 이후 외부 강연 때 늘 어디 가도 사회 선생님 콘텐츠와 이후 극복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당시 조카의 담임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본 조카가 저녁에 누나와 가족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사실이 알려졌다. 사실, 사회 선생님 사건 이후 내 나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술만 먹으면 본능적으로 선생님을 증오하고 분노했다. 






이.남.호! 너 한번만 더, 밖에서 이상한 행동하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꺼야!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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