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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Feb 01. 2024

<제16화> 운명을 바꾼 책 : 천운(天運)

세상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학생보다는 사회에서

1990년대 초, 길거리 전봇대에는 ‘말’, ‘자신감’, ‘성격 개조’ 광고들이 붙어 있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그곳에 가면 어떻게 교육하는지 궁금했지만 당시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나중에, 아주 나중에 성인이 되면 꼭 한 번 가 봐야겠다는 마음만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친형이 자고 있는 나를 깨우며 책을 보여 주었다.

“남호야! 남호야! 이거 봐 봐.”

“응? 왜, 형?”

“이 책 멋지지 않니일어나서 한 번 봐 봐.”

이게 뭔데?”     

눈을 비비며 책장을 펼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심장이 터질 듯했다. 부산의 시내 중심지나 지하철 안에서 어떤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혹시 연극인 줄 알고 형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형? 여기 이 사람 뭐 하고 있는 거야?”

“응, 지금 자신감, 담력, 배짱, 말하기 훈련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사람들은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회 불안장애(신경성 노이로제)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가 이 책을 보고 학원에 와서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이야. 대부분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교사, 강사, 직업 군인, 세일즈맨, CEO이고 전국에서 온대. 형도 여기 다니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수강료가 비싸서 지금은 못 다녀. 남호야, 나중에 형이랑 같이  여기 다니자이 사람들 정말 멋지지 않니남호도 여기 다니면 자신감도 생기고 성격도 좋아질 텐데.”

“와, 정말 미쳤다. 이 사람들 왜 이래? 정말 돌았군.”     


나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펼치면서 그들을 비난하고 부정했다. 그런데 나의 심장은 계속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나의 속마음은 이랬다.     


‘와! 정말 멋있다.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날까? 정말 대단한걸!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면 안 떨릴까? 정말 멋있다. 그리고 세상에 성격으로 고민하는 어른들이 정말 많구나. 나만 이런 줄 알았는데. 아! 읽고 싶다. 정말 멋지다. 부럽다.’     


나는 강하게 부정하고 관심 없는 척하며 이부자리에 누웠다. 형은 웃으면서 마치 내 마음을 꿰뚫은 듯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남호야. 읽고 싶으면 읽어. 형은 다 읽었어.”     

그래서 나는 이 책들을  계속 읽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읽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학생보다는 사회에서 일하는 어른들 중 나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또한 내가 열등감이라는 마음의 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도 나에게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았던 이 간단명료한 말을 책 속에서 얻다니! 나는 웃으면서 감사했다. 마치 나도 내면의 힘을 길러 변화에 성공하여 적극적인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감정 표현을 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졌다. 설사 그것이 거짓이라도 나에겐 달콤한 말이었다.     


‘훈련하면 훈련한 만큼 잘할 수 있다.’


책 속에 나온 구절이다. 35년이 지난 2024년 지금, 나는 이 문구를 가장 좋아하고 교육생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에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후 이 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신 같은 존재가 되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또 읽었다. 너무 많이 읽어서 찢어지면 테이프를 붙이고 또 읽고 읽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갔고, 1년 4개월간 이 책을 수십 번 다시 읽으며 완전히 독파했다. 


예를들면,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고, 어느 부분에 어떤 사진이 있는지까지 기억할 만큼 반복하여 읽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하고자 하는 열정과 동기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책 속에 나온 사진처럼 길거리에서 대중 스피치 훈련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책 한 권이 나의 두 손에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나는 이 책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었다. 책에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성경처럼 ‘희망의 메시지’였다. 당시 같은 반 친구였던 태영이라는 동네 친구는 25년 뒤 다시 만났을 때 내가 얼마나 변화를 갈망했는지에 대해 말했다.


“나는 네가 이상한 책을 보여 주었을 때 솔직히 좀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책을 보니까 나도 끌리고 따라 하고 싶더라. 그런데 난 못 했어. 왜냐하면 그렇게 했다간 집에서 난리가 날 거고, 무엇보다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거든. 난 남호가 변화하려고 하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어. 왜냐하면 난 그렇게 못하니까….”     


아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집에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휴일에 공원이나 산에 갈 때도 나는 항상 책을 손에 쥐고 걸어 다녔다. 어느 날, 아이들은 손에 쥐고 있는 책을 보고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신나서 그들에게 책을 펼쳐 보여 주었지만 생각 외로 아이들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남호야,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거야?” 

“응, 너 혹시 이 책 읽어 봤어?” 

“아니. 처음 보는 책인데. 이 사람들 길가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네가 왜 이런 책을 읽어?”

“어… 그냥. 멋있잖아. 하하.”     


아이들은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말마다 나는 부산의 남포동에 있는 대형 서점 ‘남포문고’의 처세술 코너에 가서 같은 책을 색다른 기분으로 반복해서 읽었다. 이때부터 남포문고 점장(사장)과 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그렇게 나는 책을 읽는 것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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