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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Jan 31. 2024

<제15화> 바람에 날아간 돗자리

가슴속에 화(火) 덩어리가 꽉 막혀 있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반장 사건 이후 나는 더 예민해지고 중학교 생활이 힘겨워지기 시작했다. 수업은 점점 어려워졌고, 몇몇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벌써 2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는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는 것뿐이었다. 나는 아침마다 학교에 오면 담임 선생님에게 신문을 한 부 드렸다. 일종의 ‘뇌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나는 3년 내내 아침 자습 시간과 조례 시간에서 열외 되었다. 질투심이었는지, 아이들은 내가 뒷문을 열고 들어오면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나는 특별한 학교 생활을 했다. 1학년 가을 소풍 때 일이다. 아이들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돗자리 있는 아이들끼리 모여 장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돗자리를 가지고 와서 짝지와 앞뒤 친구들과 함께 돗자리를 합쳐 장소를 만든 후 가방을 올려놓고, 그곳에서 김밥도 같이 먹고 함께 놀며 휴식을 취했다.     


그날 오후 시간, 선생님들은 마지막 하이라이트라며 보물 찾기를 실시했다. 이것만 하면 집에 간다는 말에 아이들은 마음이 부풀어올라 열심히 게임에 참여했다. 나 또한 보물 찾기에 열중했고, 30분 후 선생님의 확성기 소리로 게임이 끝났다는 신호를 듣게 되었다. 그날은 가을이라 바람이 많이 불었고,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주우며 청소하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에 가방과 돗자리가 생각났다. 나는 ‘앗! 내 돗자리!’ 하며 급히 가방이 있는 장소로 뛰어갔다. 그런데 내 가방만 있을 뿐 돗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다 자신의 돗자리와 가방만 챙기고 가고 없었다. 오직 처량하게 남은 내 가방만 보였다. 나는 주위를 살펴보며 돗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돗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훔쳐갔다고 생각하며 포기하려는 차에 초등학교 동창인 병관이가 나를 불렀다. 병관이는 그날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남호? 이거 네 거지?”

“엇, 내 돗자리!”     

병관이는 화가 난 듯했다.     

“야! 네 건 좀 네가 챙겨. 돗자린 날아간 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그는 내가 답답했는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일부러 날아간 돗자리를 주워서 나에게 준 것이었다. 순간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나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부터 그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매우 도전적인 아이였다. 또한 공부는 상위권에 속해 항상 반의 상위권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는 내가 답답했는지 아니면 내가 자신과 동창인 것이 부끄러웠는지 그동안 말을 아끼다가 이날 처음으로 내게 관심을 갖고 말을 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말이 귓가에 계속 먹먹하게 울렸다.


지난 반장 사건도 그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반장이 병관이의 짝지였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답답하고 어리석게 행동했다. 같이 돗자리를 썼던 친구들은 얍삽하게 자신들 것만 챙기고 내 건 멀리 날아가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강력히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에 풀이라도 발랐는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만약에 병관이나 다른 적극적인 아이들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달랐다. 누군가 나에게 왜 못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혀를 잡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서 속 시원하게 따지고 싶었다.


“야, 이 나쁜 놈들아! 야비하게 너희들 것만 챙기냐. 정말 못됐다. 나쁜 놈들!”     

집에 돌아와서도 오늘 있었던 일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화가 풀리지 않았다. 가슴속에 화() 덩어리가 꽉 막혀 있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또한 병관이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나니 더 기분 나쁘고 나 자신이 비참했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내 주장을 당당히 펼치지 못한 점이다. 이대로 평생 살아야 하는가? 다른 적극적인 아이들처럼 공부는 좀 못해도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 표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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