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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겐 Jan 30. 2024

<제14화> 떠든 사람 이남호 : 2차 PTSD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1989년, 중학교에 올라가면 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성격은 예전과 똑같이 소심했다. 새로운 친구들은 호기심으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최대한 성의를 보이면서 호감을 표시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 수업 시간이었다.     

그는 1학년 선생님 중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었는데, 뺨을 한 번 때릴 때마다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심하게 때렸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성을 따서 ‘오리발’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날은 분위기상 떠들면 안 좋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아이들은 조용히 수업을 맞이했다. 선생님은 자습 시간을 주었고, 반장에게 한마디 남기고 사라졌다.


“반장, 떠드는 놈 있으면 칠판에 적어. 내가 박살 내 줄 테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물론 조용한 나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밀린 필기를 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던 중 뒤에서 손가락으로 나의 옆구리를 찔러 대기 시작했다. 순간 옆구리가 찌릿찌릿하며 간지러워 뒤돌아보았다.     


그는 나에게 입김도 안 나올 거 같은 모기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남. 호. 야.”

“…….”

“남. 호. 야.”

“왜~?”

“지. 우. 개. 좀.”   

  

나는 곧장 지우개를 집어 등 뒤로 손을 뻗어 빌려주었다. 그런데 그는 1분도 안 되어서 뒤 또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남. 호. 야.”

“…….”

“남. 호. 야.”

“어… 왜?”

“앞. 에. 칠. 판. 봐. 봐.”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떠든 사람 – 이남호’     


나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다. 이럴 수가! 반 아이들의 시선은 나를 향해 고정되었고, 반장은 한 건 올렸다는 표정으로 요즘 말하는 일명 ‘썩소’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반장이 바로 지워 주길 바랐다. 그러나 표정을 보아서는 안 지워 줄 것 같았다. 순간 혈압이 오르기 시작하고 손에서는 땀이 맺히며, 심장 박동 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그때 창문을 열고 담임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나를 호명했다.     


“이남호! 나와!!! 이 새끼! 내가 떠들지 말라고했는데 그새 떠들어?”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죽었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공포에 질린 채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쪽 손목시계를 풀고, 나의 왼쪽 뺨을 엄청 세게 여섯 대 정도 내려쳤다. 나는 뒤로 3미터 정도 밀리면서 땅에 주저앉았다.     

“짝! 짝! 짝! 짝! 짝! 짝!”     


순간, 귀에서 멍한 기계 소리가 들리고 앞이 깜깜해졌다. 아이들은 간접적인 공포감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반장은 미안함 하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억울하다. 나는 떠들지 않았는데 내가 왜 반 대표로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나? 저 강도 같은 반장 놈이 나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았으면 내 이름 석 자를 칠판에 저렇게 자연스럽게 적었을까? 수업 끝나고 저놈과 한판 붙을까? 아!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떡하지? 내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없다! 이 멍청이 이남호!!!’     


수업 종이 끝날 때까지 나는 왼쪽 볼에 찍힌 선생님의 다섯 손가락 도장을 만지면서 멍하게 칠판과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반장은 평상시처럼 다음 영어 시간을 위해 단어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나는 당장이라도 주먹을 쥐고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저놈은 나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내가 이렇게 심하게 맞았는데. 지금 다가가서 저놈의 얼굴을 뭉개 버릴까?’ 나는 수없이 갈등 속에서 방황했다. 쉬는 시간 10분은 총알처럼 지나가고, 다음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하루 종일 반장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억울함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아 나는 늦은 밤까지 잠을 설치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나도 다른 아이처럼 내 감정을 원활하게 표현했으면 좋겠는데 만약에 병관이라는 친구라면 어떻게 했을까?  공부를 좀 못해도 내 감정만이라도 속 시원하게 표현했으면 좋겠다. 나는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몹쓸 정신병이 걸렸을까. 정말 나는 구제불능인가. 남에게는 사소한 일인데 나는 왜 이것이 이렇게 심각하게 느끼는 걸까. 혹시 큰 병에 걸린 걸까? 다시 초등학교 선생님께 편지를 써 볼까?  내 감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 방법만 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앞으로 저 야비한 반장은 더욱 설칠 테고, 또 다른 아이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고 시비를 걸면 어쩌지? 어쩌면 좋지?’



<여기잠깐! 생각해봅시다.>

남호의 경우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건으로 추후 사회불안장애 Social Anxiety Disorder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불안장애란 어떤 공개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할까봐 두려워하는 정신 건강 문제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공적 상황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갖는다. 즉,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에 지나친 두려움을 갖는다.

둘째, 사회적 상황에서 회피하게 된다. 즉, 어떤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극도의 불안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향을 갖는다.

셋째,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하거나 비판할 것에 과도한 걱정을 한다.

넷째, 신체적 증상을 보인다.  떨림, 심장 박동 증가, 심하면 구토, 어지러움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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