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통해 나를 만나는 시간
기억을 담은 공간 1. 도서관
도서관 3층, 탁 트인 공간을 좋아했다. 칸칸이 자리가 놓인 열람실에서는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3층의 공간은 달랐다. 마치 나만의 커다란 서재에 앉아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책꽂이에는 각종 논문들이 꽂혀있고 외국 잡지들과 같은 정기 간행물들이 놓여있어 언제든 편하게 읽어볼 수 있었다. 널찍한 테이블에 신문을 펼쳐놓고 읽는 사람, 전공서적을 읽는 사람, 논문을 읽는 사람, 잡지들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사람들까지 정적인 공간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라는 것이 참 기분이 좋았다. 책과 사람이 만드는 공간의 부위기가 좋았고 개인적으로 대학생이라는 기분을 가장 많이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곳에서 난 주로 그냥 앉아만 있다가 나왔다. 무엇을 읽고 지식을 탐구하기 위함이 아닌 그냥 그 공간 자체가 좋았던 것이다.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고 앉아서 생각하고 쉬고 MP3로 음악을 듣다 나오는 도서관 3층은 모두의 공간이면서 나만의 심리적 공간이었다.
기억을 담은 공간 2. 카페테리아
조용한 카페에는 늘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스쿨버스 첫 차를 타고 등교하여 들르는 곳은 어김없이 후생복지관(후복관)3층 카페테리아였다. 블루마운틴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진짜 블루마운틴 원두를 사용한 커피였다면 그 가격에 못 마셨을 것이다 - 창가 자리에 앉아 학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게시판에 참 쓸데없는 글을 남기고 나와 강의실로 걸어갔다.
다음날 또다시 스쿨버스에서 내려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이번에는 헤이즐넛 커피를 주문했다. 달달한 향기가 좋아 아침에 조용한 카페에서 한 잔 마시면 기분이 좋아졌다. 다시 학과 커뮤니티에 접속해 흔적을 남겼다. 늘 그랬듯 같은 하루를 카페테리아의 커피 한 잔과 쓸데없는 게시글로 시작했다.
기억을 담은 공간 3. 캠퍼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정문부터 나의 전공 학과 사무실이 있던 어문관 까지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긴 거리여서 셔틀버스가 운행되었다. 그래도 캠퍼스의 풍경이 좋아 자주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늘 걸어 다녔다. 2001년 2월, 아직 입학하기 전 학교에 가보았다. 버스가 학교 안쪽까지 들어가는 줄 모르고 정문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도로의 초입에 학교 이름이 적힌 석판이 놓인 지점에서 내렸다.
20분 정도를 걸어가니 이제야 학교 정문에 이르렀다. 산자락에 위치한 캠퍼스이다 보니 걸어가는 길 자체가 산책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문부터 또 20분을 걸어가면 그제야 어문관이 나왔다. 처음 대학생이 되어 걸었던 그 길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스무 살 청년의 걸음은 힘이 있었고 활기찼다. 두리번거리며 두 눈에 캠퍼스의 풍경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 도로를 따라 곁길로 형성되어 있던 건물들 입구까지 굳이 걸어가 보기도 했다. 여기가 나의 청춘을 보낼 곳이라는 설렘으로 모든 공간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오르막을 올라가다 보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못이 하나 있었다. 연못에는 오리 몇 마리가 유유자적 자신들만의 공간을 누비고 있었고 주변 벤치에는 커플들 몇몇이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가던 곳
돌이켜보면 캠퍼스는 젊은 에너지를 가장 많이 분출시킨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색의 공간이 되어 주었다. 폐쇄된 공간보다는 탁 트인 공간을 좋아했고 차를 타고 이동하기보다는 걸어 다니기를 좋아했던 것도 그만큼 캠퍼스의 정취가 아름다웠던 것도 한몫했다.
캠퍼스 어딘가의 벤치를 좋아했고 도서관 3층을 좋아했으며 후복관 카페테리아에서 늘 하루를 시작했다. 어문관에서도 학과 사람들이 자주 모여 있던 학과 실보다는 시청각 실이나 식당 한쪽에 자리를 트고 앉아있던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좋아하던 공간들에 담겨 고스란히 기억으로 남겨졌다.
어쩌면 나의 대학 생활은 어울림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하루하루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 나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20년이 지난 지금, 사회라는 커다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가지만 동시에 홀로 설 수 있는 것은 그 시절 차곡차곡 채워둔 시간들 덕분인 것 같다. 그리고 과거의 시간은 현재의 나의 시간과 이어져 또 다른 공간을 만나 새로운 기억들로 남겨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