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글쓰기를 위한 방법

- 지금 당신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by 알레

꽉 막힌 도로의 정체가 싫었다. 그래서 언제나 이른 아침 누구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오랜 시간 나름의 규칙적인 하루를 시작했더니 그 넓은 올림픽도로에서도 종종 마주치는 차가 있었다. 신기했다. 가끔 안 보이면 궁금할 정도였다.


한강에는 참 다리가 많다.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다리 위에 걸친 아침 햇살은 눈이 부시지만 언제나 그 순간 기분이 좋았다. 창문을 열고 달려도 될 만큼 날씨가 좋을 때의 아침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했다. 직장 생활을 하던 때의 하루의 시작은 대체로 그랬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선다. 서두를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올림픽도로가 아니다. 그저 동네의 2차선 도로 위에 서있다.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유모차를 끌고 오가는 엄마, 아빠들이 보인다. 순간 초록색 버스가 지나간다. '오! 오! 오!' 뒷자리에서 격양된 소리가 들린다. '오, 초록 버스가 지나갔네', '안녕, 했어?'


아침 풍경이 바뀌었다. 한때 나에게 비일상의 영역에 있던 시간들이 이제는 완전한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육아 중인 아빠다. 더 이상 꽉 막힌 도로의 정체는 없다. 지나가는 모든 풍경을 담아 아이에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는 이 시대의 평범한 아빠다.








삶이 재미있는 것은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자각하게 되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회사 인간으로 살아갈 때는 그 아침 출근길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전우들의 삶이 언제나 눈에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가스계량기를 만들 때는 집집마다 달려있는 가스계량기가 눈에 들어왔고 김치 공장에서 일했을 땐 마트에 포장 판매되는 김치들과 유산균에 대한 것이, 그리고 원예 회사에서 일할 땐 온 천지 사방 식물들이 들어왔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환경 운동 가였던 것처럼 착각이 들만큼.


육아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거리를 오가는 유모차들이 눈에 그렇게 띈다. 심지어 개모차도 눈에 띈다. 부부가 함께 지나가는 것을 보면 '저 집은 육아 휴직 중이신가, 아니면 나처럼 퇴사하신 건가, 아님 재택근무 중인가' 참 쓸데없는 생각들이 순간 스쳐 지나간다. 그런가 하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아장아장 제법 잘 걸어 다니는 아가를 보면 '우리 애보다 작은 것 같은데 벌써 저렇게 걷네, 우리가 아가를 너무 조심스럽게 키우나'하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이처럼 나의 모든 세상은 달라졌다. 어느새 그 중심축이 회사 인간에서 육아 아빠로, 아이 사진을 찍으며 성장 기록을 남기는 아빠 진사로 옮겨졌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나의 페르소나가 바뀐 것이다. 언제나 나의 첫 번째 페르소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누구였다. 제법 오랜 시간 페르소나의 중심은 직장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나의 페르소나를 떠올려본다면 첫 번째 페르소나는 육아 대디이다. 그다음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작가이며 마지막이 이미 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장인이었던 나이다.


지금 내가 어떤 역할의 옷을 입고 있는지에 따라 생각의 모드도 바뀌고 걱정거리도 바뀐다. 심지어 글과 글을 스는 감정도 조금은 달라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기에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글쓰기 이제 막 시작했을 무렵, 나를 구성하는 외부세계는 언제나 좋은 소재가 되었다. 특히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맛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더 이상 외부세계의 다이내믹한 소재에서 멀어지고 나니 소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쓸거리가 없어졌다. 자기 계발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써보기도 했지만 어딘가 헛헛함을 느끼게 되었다. 직장 생활만큼 가장 실감 나게 현실세계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만큼 강력한 임팩트가 없었기에 더 그랬다.


그때부터 일종의 자구책으로 외부세계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외부세계를 바라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늘 간과하고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닭볶음면처럼 강렬했던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가 평양냉면같이 슴슴한 맛을 느끼려니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점점 뒤돌아 뭔가가 밟히는 게 생겼고 그것들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내 안에는 결코 작지 않은 에너지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동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글쓰기의 챕터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글쓰기는 이렇듯 오르내림의 시간을 거쳐가며 점점 나를 소재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화시켜주었다. '나'라는 우주는 생각보다 무궁무진한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때로는 오늘의 생각이 과거 어느 때의 생각과 만나 연결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소재가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소재는 둘로 넷으로 계속 세포분열을 하듯 잘게 쪼개지고 세분화되어감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나는 내가 어떻게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볼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이 평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난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글에서 본 표현을 빌려 보자면 '일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어나더 레벨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나더 레벨'이라고 표현하니 굉장한 무언가 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속적인 글쓰기는 결국 나를 어나더 레벨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생각 쪼개기가 되기도 하고 또 합치기가 되기도 한다. 작은 생각의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잘게 부시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계속 쓰는 것이다. 적어도 브런치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내면에 계속 쓰게 만드는 충분한 동기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계속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묻기 전에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 때가 참 많다. 단지 내가 알고 있음을 확신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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