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초에 잘 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난 후 두 부류의 작가님들을 보게 되었다. 계속 쓰는 사람과 결국 쓰지 않는 사람.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거나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쓰다 보면 훌훌 써지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는 한 편을 발행하기 위해 나름의 시간 동안 고민을 거듭한다.
글쓰기도 버거운데 책을 출간한 저자들은 정말 대단하게 보인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기획부터 집필의 시간을 지나 퇴고의 과정을 거쳐 전문 에디터의 손에 원고를 넘기기 까지, 한 줄기의 맥락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은 실로 존경스러울 정도다.
남들은 그렇다 치고, 그럼 나는 왜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막말로 지금 나에게 글쓰기가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좋아서 계속 생각나는 것을 메모해두었다가 잠잘 시간 아껴서 글로 적어 내려가기 바쁠까.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이유. 오늘은 그것에 대해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중독성 있는 행위인 줄은 전혀 상상조차 못 했다. 지난날 석사 논문을 쓰며 밤낮 고생했던 경험은 '내 인생에 더 이상 글쓰기는 없다!'라는 강력한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글이 글을 났는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니. 정말 사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117편의 글을 발행했다. 서랍 속 글까지 포함하면 120편이 조금 넘는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동안 대략 한 달에 10편의 글을 꼬박 발행한 셈이다. 살면서 이것만큼 꾸준히 한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알레 작가님은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최근 동료 작가님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원동력이라고 할 만한 게 있었나 싶지만 그래도 어떤 행위를 1년간 지속했다는 것은 그만한 동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제 것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내 안의 글쓰기 이유를 떠올려 정리해보았다.
1. 기본적으로 잘 쓸 생각을 안 한다.
그래도 나름 다음 메인에 몇 번 올라 높은 조회수를 기록해본 사람으로서 참 아이러니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애초에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오히려 글쓰기가 편해졌다. 부담이 없어졌다. 아마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면 이미 진작 글쓰기를 포기했을 확률이 높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평소 글을 좀 쓴다고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라 한들 공개된 플랫폼에 직접 써보고 글을 발행해보는 것은 또 다르다. 나도 모르는 나의 글쓰기 습관이 베어 나오기 마련이다.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인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와 같이 처음부터 잘 쓰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자만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잘 쓰려고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쓰고 또 쓰고 또 쓰는 것이 스스로에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2.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
글쓰기의 오묘한 재미 중 하나가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가만히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머릿속은 결코 가만히 있지를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다 보면 하나의 글이 완성되고 나면 해당 주제에 대해 더는 쓸 말이 없을 줄 알았다. 특별히 잘 아는 전문 분야가 아니고서야 이해도가 깊지 않을 테니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에 대해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에는 큰 틀에서 직장을 이야기하게 된다. 감정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전개하여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더 이상 내용이 없을 줄 알았지만 어느새 나는 큰 틀을 쪼개고 있었다. 점점 더 세세한 것들을 관찰하게 되고 묘사하게 되었다. 가령 전체 직원들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한 팀, 한 사람, 그리고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과의 상호 관계 등. 소재가 무궁무진하게 생성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마치 장면을 줌 인, 줌 아웃하듯이 여러 가지 소재를 가까에서 관찰하다 멀리 두고 보기도 하니 그때마다 다른 글이 나온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글이 글을 낳는 경험을 하게 되면 아마 누구라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고이면 고일 수록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3. 기록하는 습관이 덕분에.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기록을 하는 이유는 생각은 금방 휘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 순간 PC나 노트북 앞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순간 떠오르는 좋은 생각들은 기록해 놓지 않으면 금방 사라진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부터 나의 메모장에는 '글 소재'라는 제목으로 생각을 적어두는 메모가 생겼다.
희한한 것은 유난히 샤워할 때나, 걸어 다닐 때 생각이 많이 난다는 것이다. 특히 샤워할 때 떠오르는 에피소드들은 잊어먹지 않으려고 계속되내며 샤워를 끝마친 적도 있다. 걸어 다닐 때 떠오르는 생각은 음성으로 녹음해두기도 한다. 음성 녹음은 그냥 두서없이 기록할 수 있어서 나름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기록하기는 습관 형성을 위해 의지를 가지고 해야 하는 행동이 아닌 좋은 글감을 놓칠 수 없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숙명적 행동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기록은 언제나 필수다. 기록하지 않으면 결국 잊힌다. 그러니 잘 기록하는 것은 잘 쓰기 위한 선행조건이다.
4.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한 환경설정이 필요하다.
보통 환경설정이라 하면 실제로 글을 쓰는 자리 주변을 어떤 환경으로 조성하느냐에 대한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이 부분도 중요하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는 글쓰기 환경을 세팅한다는 것은 마음가짐으로서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글을 꾸준히 쓰게 만드는 좋은 환경요소 중 하나는 다작하는 동료를 곁에 두라는 것이다. 선의의 경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다소 과한 듯싶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 표현이 가장 근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활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동을 하고자 한다면 운동을 하는 사람들 주변으로 가야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자 한다면 실제로 소식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야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글을 발행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멈춰 서지 않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좋은 자극은 언제나 좋은 동기가 되어준다.
만약 글을 꾸준히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극복하고 싶다면 글을 쓰는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더 강한 통제력을 갖고 싶다면 유료 모임일수록 효과가 크다. 혼자서 꾸준히 하기 어려운 사람일수록 동료의 존재는 지대할 것이다.
5. 글쓰기를 통해 생각이 정리되고 나 자신이 보다 선명해진다.
글은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활자로 적어내는 것이다. 생각이 활자로 기록되는 순간 그 기록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게 되고, 소리 내어 읽기까지 하면 청각적으로도 정보를 습득하게 된다. 이를 통해 생각이 더 선명한 개념으로 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영향력 있는 리더들의 경우 대체로 글을 잘 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누군가를, 대중을 잘 설득시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평상시에도 생각이 제법 빠르게 정리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생각을 하는 주체인 나 자신을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6. 쓰니까 작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쓰니까 작가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작가라고 불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쓰는 것이 필요하다. 솔직히 양적 글쓰기가 전부이겠냐만은 양을 채워갈수록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가 수월하다. 많은 글들이 쌓이다 보면 일정 부분 생각의 맥을 같이 하는 글들을 묶어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을 잘 엮으면 책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숙명은 계속 쓰는 것이지 않을까. 직장 생활의 애환이나, 육아의 현실적 괴로움에 대해서도 쓰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대략 여섯 가지의 글쓰기 원동력을 적어보았다. 적다 보니 내 안에 생각보다 더 강한 원동력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동력을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 지금도 이 생각들을 글에 담아 옮겨 적고 있다. 이제는 글쓰기의 재미를 느끼는 정도를 넘어 중독자가 돼버린 듯하다. 그래서 마치 예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듯 글쓰기의 효용을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다닌다.
글을 쓰다 보니 이젠 출간에 관심이 생긴다. 사실 올 해의 계획 중 하나가 책 출간이기도 하다. 최근 지인들 중 하나 둘 출간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한 편으로는 부러웠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어쩐지 그 기회가 점점 나에게도 다가오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나의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계속 쓰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글은 계속 쓸 것이다. 1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앞으로 10년 후의 나는 또 다른 깊이를 가지고 삶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차곡차곡 기록을 쌓아놓는다면 훗날 오늘의 나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난 일이 될 것 같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부디 지금처럼 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