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히 바라면 언젠간 이루어지겠지.
내 주변에는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다. 글쓰기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쓰시는 분들과의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있다. 나 역시 글을 쓴 지 겨우 1년 남짓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낸 분들이나 이제 막 시작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일상의 공간과 글 쓰는 공간의 분리'
누구나 꿈꾸는 나만의 작업 공간. 그러나 현실은 책과 각종 아기 짐들로 가득 찬 방 한쪽에 놓인 1600x1200 사이즈의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전부이다. 어쩌면 그나마 이 정도 환경이라도 갖추고 있는 것이 어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공간의 분리가 간절한 이유는 일상의 공간에는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육아 중이신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실 거라 생각된다. 내 아이야 언제나 사랑스럽지만 집중해야만 할 때 흐름이 끊어질 때면 참 마음이 어렵기만 하다. 겨우 임계점을 지나 몰입의 단계로 접어들어 갈 때 등장하는 아이는 리셋 버튼과 같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가끔 그냥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나에게 이상적인 공간은 어떤 모습의 공간일까.
마치 영화에서나 TV 드라마에서 나오듯, 등 뒤로 창이 있고 창 앞에는 가운데에 책상이 놓여있다. 그리고 책상 앞으로 작업실의 중앙에는 소파가 서로 마주 보고 있고 양 쪽 벽에는 책장이 길게 놓여있다. 방 안의 한쪽 모퉁이에는 턴테이블이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우드톤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며 방 안의 전체 조명과 별도로 책상 위에는 작업용 스탠드가 따로 배치되어 있다.
창 밖으로는 복잡한 도시 풍경이 아닌 초록 초록한 풍경이 펼쳐지며 문을 열면 새소리와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자연이 주는 영감으로 가득 채워진다.
또 다른 공간은 어떻게 꾸며볼까. 1인실 규모로 만들어진 방에는 창이 있고 창 앞에 책상이 놓여있다. 한쪽 벽면에는 지친 몸을 쉬게 해 줄 싱글베드가 있고 다른 한쪽 벽에는 간단한 수납공간과 책 장이 전부다. TV도 주방도 모두 공용 공간에 있을 뿐 방 안은 지극히 심플하다. 오직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에만 최적화되어 있다.
아침부터 낮 시간 동안 공용 공간에서는 커피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쿠키 정도가 제공된다. 밤이 되면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작가님들 간의 자유로운 네트워크 시간이 만들어진다. 때론 북 토크를 하기도 하고 글쓰기 강연이 열리기도 하며 인생의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공간의 운영은 단기 숙박보다는 최소 일주일 이상, 중 장기 숙박자 위주로 진행되며 조식은 커피, 토스트, 과일, 시리얼 정도만 기본적으로 제공된다. 밖으로 나서면 산책하기 좋은 길과 만난다. 10분은 걸어 나가야 카페가 있고 소품샵이 있으며 몇 안 되는 식당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래서 대체로 조용하고 한적하다.
일부러 불편을 감수하고 찾아오고 싶은 공간이길 원한다. 여행객이 아닌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만 찾아오는 공간이길 바란다. 조용하지만 마음속은 가득한 영감들로 주체할 수 없는 창조적인 장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이런 공간이 정말 있었으면 좋겠다.
퇴사 7개월째. 난 꿈을 꾸고 있다.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 눈치챘겠지만 그래, 이건 꿈이다. 현실이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해진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여기에 기록된, 지금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꿈이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그리고 그 순간에 다시 이 글을 열어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를지.
그렇다. 나는 지금 글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굳이 내가 삭제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인생 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을 향해 마법의 주문을 걸고 있는 것이다. 삶이 가지고 있는 재미난 점이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게 되고 그것을 기록하고 나면 서서히 그쪽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기록한 이 꿈은 사실 오늘만 생각한 꿈이 아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줄곧 상상하고 품어왔던 생각이다. 그것을 오늘 처음으로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퇴사 후의 삶은 여전히 버겁다.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저 글 쓰는 것 하나 빼고는 도대체 내가 뭘로 먹고살 수 있을지 막막한 건 여전하다. 그래서 오늘의 기록은 앞으로 나의 삶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막연할 때, 방향을 잃어버렸다 느낄 때 이 글을 계속 꺼내보며 방향을 재정비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을 더해본다면, 언젠가 이 글을 읽고 무모해 보이는 나의 꿈을 지지해준 작가님들께 초대장을 보내는 날이 왔으면 하는 것이다. 초대장에는 이렇게 적고 싶다. '친애하는 작가님, 작가의 공간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간절히 바라면 언젠간 이루어지겠지.
모두 다 이루어져라 아틸리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