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발적으로 폭풍 가운데 들어서는 시간.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빠져버린 기분이다.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왜 생겨난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갑자기 불능 상태에 빠진 느낌이다. 잘 돌아가던 프로그램이 어디선가 갑자기 충돌이 일어나 에러가 난 것처럼 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어떤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조차 혼란스러워 그냥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적어보며 글쓰기를 시작해본다.
퇴사 후 이런 줄곧 이런 감정 상태에 빠지곤 한다. 말 그대로 이유도 없다. 아니 이유가 없을 리 없다. 또다시 불안이 불쑥 찾아와 제 멋대로 감정의 문을 열고 들어와 앉은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참 진득한 녀석이다. 수차례 내쫓아도 훅 들어와 버린다. 사실 난 나의 불안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 관심과 인정. 나는 생각보다 이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퇴사 후 글쓰기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요동치는 감정의 폭풍 가운데 들어가 나와 마주하게 위해서다. 나의 불안도 나를 닮았는지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또 왜 찾아왔는데?' 하는 심정으로 마주 앉아 시시콜콜 이야기를 들어줘야 결국 끝이 난다는 것을 잘 알기에 괴로워도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난 나를, 나의 불안을 마주하고 있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직장생활의 쓸모 중 하나는 관심과 인정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물론 관심은 대체로 지나친 경우가 많고 인정은 몰인정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다. 그러나 그 덕분에 필요에 따라 삼삼오오 연합하여 쌓인 것들을 풀어내는 맛이 나름 재미있긴 했다.
직장에서의 관심과 인정은 상사로부터나 회사차원에서 보다 동료들에게서 받을 때 더 값지다. 그 이유는 회사보다는 동료 집단에서 진짜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의 관심과 인정은 때로는 나의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주는 듯한 기분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회사를 졸업하고 난 후 가장 많은 그리움은 바로 이러한 부분을 향해 있었다. 매일 누군가와 함께 하고, 에너지를 섞어가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나에게는 참 큰 의미였음을, 그것의 빈자리를 통해 많이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의 불안도 같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소속되어있던 집단을 통해 느껴왔던 나의 가치를 이제는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함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만큼 내가 나를 인정해주는 것보다 남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이 오랜 시간 나에게 배어있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잔뜩 삐뚤어진 마음은 온갖 불편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글을 잘 쓴다는 누군가의 칭찬은 '뭐 남들보다 조금 쓰긴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출간 제안을 받거나 다른 제안을 받을 만큼은 아닌 듯'이라는 부정적 확대 해석으로 다가온다. 사진을 보면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칭찬은 '그런데 돈 주고 살만큼이나 강의를 제안할 만큼은 아니야'라는 식으로 왜곡시켜 버린다.
나도 알고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굴절돼버린 생각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너무나 귀하고 고마운 피드백이다. 글쓰기도 사진도 나에게는 그저 이제 걸음마하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불안은 이러한 소중한 피드백들이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래서 자꾸 별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 무지 애쓰는 것 같다.
한동안은 이런 마음이 들 때면 꾀나 오랫동안 괴로웠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도통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 풀어낸다. 고름을 짜내면 그 순간은 아프지만 금방 아물어 통증이 가라앉는다. 불안도 고름을 짜내듯 글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빨리 아물게 만드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점점 더 글쓰기에 집착하게 된다.
언제쯤이면 누군가의 반응으로부터 일희일비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반응은 그저 옵션일 뿐인데 자꾸 그것이 본질인 것처럼 착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불안은 주로 이런 착각을 타고 스며든다. 그럴 때면 글쓰기 본연의 목적을 다시 떠올린다. 나는 그저 쓰고 싶어서 쓴다는 것을, 나는 소비적 일상에서 생산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쓴다는 것을, 나는 기록하고 싶어서 쓴다는 것을 말이다.
글쓰기는 내 인생에 거의 유일무이하게 스스로 선택하고 좋아서 꾸준히 하는 것이다. 사실 반응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는 것 또한 거짓이겠지만 그보다 오늘 또 한 개의 글을 써냈다는 것에, 잠시 불안에게 빼앗긴 생각의 축을 옮겨버렸다. 그리고 짧은 시간 마주했던 불안에게 나직이 인사말을 남겨주었다.
나의 불안아. 덕분에 오늘 글 하나 쓰고 잔다.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