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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깨달은 인생이라는 아이러니

- 결국 이 모든 것의 총합이 '나'라는 사실.

by 알레

나는 밝으면서 어둡다. 즐거우면서 우울하고, 생각이 없는 듯 살지만 늘 복잡하다. 남에게 관심이 없으면서 또 있고, 누군가의 관심을 딱히 구하지 않으면서 갈증을 느끼는 소심한 관종이다. 동화 같은 삶을 꿈꾸기도 하는 몽상가이면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남이 가진 재능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나의 재능은 그저 당연한 것쯤으로 여긴다.


정해진 시스템과 규율을 중요시하면서 속박을 당하거나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무리 속의 소수가 좋고, 리더는 적성에 안 맞지만 리딩 하는 것은 싫어하지 않는다.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싫은 건 분명하다. 일을 하지 않아 평일의 여유로움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하다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덥다면서 이불은 꼭 덥고 자고, 허리가 아프다면서 여전히 삐딱하게 앉는다. 퇴사하면 서울의 안 다녀본 곳들을 다녀봐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막상 퇴사하고 나니 늘 집돌이 아니면 동네를 벗어날 생각을 안 한다. 귀동냥한 것은 있어 살아갈 고민을 털어놓는 남들에게는 퍼스널 브랜딩이다, 지식창업이다, 수익 파이프라인이다 잘도 설명해주면서 정작 나는 여전히 뭐해먹고살지 몰라 그저 막막하다.


아침에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고 밤에는 울적함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아들한테 사랑한다고, 아빠의 보물이라고 매일 이야기하면서 아기가 짜증내면 신경질을 팍 내버리는 다중인격자가 돼버린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말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갈망하게 되고 막상 혼자 남아버리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아내한테 전화를 건다.


누군가의 통찰력 있는 문장을 만나면 부러운 마음에,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차오르지만 정작 독서도, 필사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미라클 모닝이 답이라고 다짐만 수십 번 하면서 일찍 잘 생각을 안 하고, 광고를 볼 때마다 혹해서 온라인 강의는 수강해놓고 나중으로 미루기만 하는 알고리즘 호구다.


이러고 사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현하시는 부모님께 누구보다 내가 제일 걱정 많이 하는 사람이니 두 분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면서 정작 난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퇴사하기 전 만들어 놓은 마이너스 통장의 골이 더 깊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위기감을 갖기는커녕 여전히 남아있는 한도에 안도하게 되고 거의 다 끝나가는 실업급여 수령 횟수를 위안삼아 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무슨 똥 배짱인지 모를 이 무수한 아이러니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모두 나라는 사실이 이젠 놀랍지도 않다. 그냥 이 모든 것의 총합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참으로 맥락 없는 아이러니를 가득 안고 살아가는 인생인 듯싶을 때면 마음 깊은 곳부터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인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현시대는 누군가의 삶을 쉽게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무의식적인 끊임없는 비교 가운데 살아간다. 상대적으로 덜한 사람은 자존감이 높던가, SNS를 거의 안 하거나, 아니면 온라인 생태계에 무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온라인 소셜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도 무수히 업로드되는 누군가의 성공과 성취의 경험을 쉽게 보게 된다. 그 사람들의 속내야 알 방법이 없지만 대체로 뭔가 해내고 있는 듯한 사람들을 매일 보면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내가 필요 외로 더 모자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 숨이 멎는 그날까지 살아가면서 단 한 명도 걱정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걱정의 종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걱정이 없다는 사람 치고 진짜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누구랑 먹을지도 걱정하는 게 인간이니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세상에 집중하면 내면의 세계가 어떻든 나의 표면도 그렇게 보이게 만들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만 포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처음으로 가득 적어본 나의 모순들이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갖게 하지만 다르게 해석해보면 그만큼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가 넓다는 것이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래서 차라리 나의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떠들어대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하고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들의 총체적 실체가 바로 나 자신이다. 부정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모습. 가장 나다운 모습이다. 사람이 모두 모순 덩어리면 좀 어떤가.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살아가는 힘이 생긴다. 완벽하지 않아서 공허하지 않고 매일 살 방법을 찾아 허덕이니 하루가 빠르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살아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꽉 찬 하루와, 지금 내가 머무는 시간이 '죽음'이 아니라 '삶'이기에 가능한 고민들 조차 감사하다.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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