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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y 19. 2022

시선이 닿는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 하고픈 말은 많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들을 위해.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지 말고 배우의 시선을 따라가 봐. 그러면 네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될 테니까.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 속에 이런 대사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라마 속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은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다. 이들은 한 때 사랑했던 서로를 향해 비아냥 거리기 바쁘다. 그러나 이 둘의 다큐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에 담긴 둘의 시선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상반된 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로는 여전히 서로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저마다의 시선을 가지고 살아간다. 출근길에 스쳐 지나가는 수십수백 개의 시선들. 차마 대놓고 바라볼 수 없어 스리슬쩍 빠르게 옮겨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의 시선들. 아이들을 향한 애정 가득한 시선들과 거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을 향한,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버린, 불편한 시선들까지. 


일상 속에는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시선들은 비단 외부세계를 향한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향한 시선도 존재한다.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냈을 때 차오르는 자신감이 있는가 하면 내내 삐그덕 대며 보낸 하루를 보내고 난 후 밀려오는 자괴감도 하나의 시선이다. 


시선은 생각보다 많은 진실을 담고 있는 듯하다. 겉으로 아닌 체 해도 무언가에 사로잡혀버린 시선은 순간의 진실을 보여준다. 작가는 시선들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출퇴근 길에 잠깐 동안 마주하는 시선 속에서 공허함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직장 동료가 연신 태우는 담배 연기 속에서 직장 생활에 대한 갈등과 깊은 회한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어른들의 시선은 대체로 한 꺼풀 감춰져 있다면 아이들은 언제나 정직하다. 이제 겨우 16개월 된 아들은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한 것을 갈망할 때면 아빠를 한 번, 그리고 그 대상을 두 번 바라보며 점점 그것에 가까이 다가간다. 


시선을 관찰해보면 그 안에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평소 좋아하는 사진작가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진이란, 프레임 안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다 보니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는 작가의 시선이 담긴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것이다. 표현하는 매개체만 다를 뿐 글과 사진은 결국 작가의 시선이 담아내는 이야기인셈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간혹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지속적으로 소재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이 있나요?' 이 질문에 몇 차례 답변을 하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생각해보면 두 개의 질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을 꾸준히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지속할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하다. 반대로 무한한 글감을 이미 가지고 있다면 꾸준히 쓰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다양한 재료들이 필요한데 일상에서 약 1500자 - 2000자 정도 되는 글 한 편을 발행하기 위한 새로운 글감을 매번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나의 시선을 관찰한다.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 육아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그 밖에 떠오르는 생각들 모두 삶을 바라보는 일상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한 가지를 더 보태어 보자면 한 가지 대상을 360도로 입체감 있게 바라보는 것은 꾀나 도움이 된다. 눈앞의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기록하는 것과 사물의 입장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경험해보면 알겠지만 서술되는 이야기는 천지 차이이다. 일전에 커피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글을 써본 적이 있는데 나의 관점과 커피의 관점에서 기술되는 글은 너무나 상반되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의 관점: 잠들어가는 나의 정신을 깨워주는 한 잔의 커피.
커피의 관점: 한 사람을 깨우기 위해 나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이처럼 시선을 다각화해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다양한 글감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다음은 쓰는 행위를 하는 것. 그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많은 찬사를 받는 예술 작품을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독특한 시선이 늘 가장 부러웠다. 유명인이 아니어도 지인들 중에 특별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나에게는 관심이 가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시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꼭 그것이 경제적 부가가치로 연결되거나, 어떤 유명한 평론가의 호평을 받아야만 특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냥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한 사람인 '나'이기에 특별한 것이다. 


나의 시선에 자신감을 가져보자.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보자. 하고픈 말은 많지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면 오늘 하루 동안의 나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으로 출발해보자. 아무 일 없이 흘러간 하루를 그저 덤덤하게 기록하게 될지라도 어떤 누군가는 그 덤덤한 하루를 통해 위로받거나 공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당신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는 기록이 되었고 기록은 다시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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