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기억 속에 아빠와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Impossible -> I'm possible!
살면서 참 많이도 들어본 표현들이다. 그래. 이해한다. 너무 쉽게 포기하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만들어진 좋은 표현들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한편으로는 포기가 빠른 사람인 것 같다. 모든 영역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승부욕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내기 당구를 쳐도 늘 참가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물론 그렇다고 승률이 낮지도 않았다.
내 나이 마흔이 되는 해에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되니 별생각 없이 살아온 인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퇴사를 했다. 자기 계발에 집중하다 보니 그동안 없던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니, 없었다기보다 사실 찾으려 하지 않았던 내 안에 살아있는 욕망들이 마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이 더 지났다. 이제 아이는 자기 의지가 강해졌다. 방긋 웃으며 아빠를 찾다가 뭐 하나라도 못하게 하면 바로 드러누워 소리소리를 치며 온 몸으로 짜증을 표현한다.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마그마를 애써 누르며 아빠는 차분하게 대처한다. 사실 속마음은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상태이긴 하지만 어쩌겠나.
아빠가 되니 내 사전에 포기라는 말이 점점 더 많아짐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째 스무 살이 되어 나에게도 도전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기에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아빠라서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아빠가 되고 난 후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살았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적어보았다.
1. 아빠의 시간은 아이의 시간. 아이가 깨어있는 동안 아빠 개인 시간 없음.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개인 시간이다. 이제야 나의 성장에 관심이 많아진 나에게 개인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솔직한 마음으로 타협하기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일들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집중의 시간도 필요하다. 주변에 비슷한 개월 수의 육아 중인 친구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본인 작업을 하려면 결국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답이다.'
부정할 수 없었다. 집에서 어떻게든 해내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아이가 없어도 사실 비슷하다. 집은 대체로 쉬는 공간으로 정의되어 있는 만큼 다른 무언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집중력을 요하는 개인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재정의 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아이가 깨있는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시간을 포기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수면시간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2.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빠의 물건들은 다 만져봐야 한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까지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돌이 지나 걷기 시작하니 아빠가 방에 있으면 무조건 방으로 와서 무릎 위에 올려달라고 보챈다. 못 이긴 척 올려주면 책상 위에 놓은 것들을 보며 눈이 땡그랗게 변한다. 아빠의 노트북, 스마트폰, 볼펜, 연필, 마우스, 마우스패드, 등등 무엇이 되었든 책상에 놓여있는 것들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손을 뻗어 하나씩 만져보기 시작한다. 행여 위험할까 싶어 손에 쥔 것을 빼앗거나 애초에 만지지 못하게 하면 또다시 진상고객님이 된다. 내 안에 또 따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를 느낀다. 그렇다고 뾰족한 연필이나 볼펜을 손에 쥐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른 것을 쥐어주려고 찾아보지만 이미 마음이 토라진 아이는 다른 건 다 집어던지기 일쑤다. 결국 아이를 들어 안고 거실로 나와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과 장난감으로 달래준다.
겨우 찾아온 평화를 잃고 싶지 않아 다시 방에 들어가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3. 밥을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점점 가물가물해진다.
참 희한한 게 있다. 왜 우리 아이는 엄마 아빠가 밥을 먹을 때면 힘을 주는 것일까. 아이가 잘 먹고 잘 싸는 것도 엄청난 축복이라 생각하니 그저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궁금하기만 하다. 입 속에 잔뜩 음식물을 넣은 채로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면 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엄마 아빠에게 이전과 같은 여유로운 식사 시간은 사치일 뿐이다. 아이는 도통 허락해주지 않는다. 아이의 배를 채우고 나서 보통 식사 시간을 가지면 잠시 동안은 아이가 기다려준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이내 지겨운지 엄마 아빠가 앉아 있는 식탁 옆으로 와 다리에 제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그리고 올려달라고 손을 쭉 뻗는다.
아빠는 입을 크게 벌려 남은 음식들을 욱여넣고 아이를 무릎에 앉힌다. 요즘 식사시간은 늘 그렇게 끝이 난다.
4. 아이는 어지르고 아빠는 치운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아이는 어지르고 아빠는 치운다. 단 정리하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장난감도 전략적으로 꺼내 줄 필요가 있다. 크기가 잘잘한 것들은 소파 밑이나 틈새, 아이의 책장에 숨겨져 버리면 는 찾는데만 시간이 다 간다. 앞서 개인 시간을 내려놓았다고 표현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잠들고 났을 때 1분이라도 더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정리의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하우도 필요하다.
우리 집 거실에는 주로 부피가 큰 장난감들이나 책들이 놓여있다. 부피가 큰 것들은 언제든 정리하기가 쉽다. 물론 소형 장난감들도 있다. 아이가 작은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 때면 예의 주시한다. 안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항상 기상천외한 장소에 자신의 장난감을 넣어둔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장소에 숨겨놓는 만큼 아이의 동선을 눈에 잘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찾기 위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언제쯤이나 아이가 스스로 정리하는 날이 올까. 아이에게 정리란 얼마나 즐거운 놀이인지 꼭 잘 알려주고 싶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5. 아빠는 언제나 4순위.
나는 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 아이도 늘 '아빠, 아빠'하며 나를 찾는다. 매일의 삶이 행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아빠는 4순위다. 1순위는 할아버지, 2순위는 할머니, 3순위는 엄마, 그다음에 아빠가 존재한다. 엄마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순위가 높은 이유는 단순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나 엉기둥기해주는 대상이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가장 제 편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일을 하시느라 바쁘신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자주 봐서 그런지 아이는 할아버지를 많이 좋아한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 하원은 주로 아빠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하원 시간이 되어 데리러 가면 아빠를 늘 반겨준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함께 갈 때면 상황은 정말 달라진다. 아무리 아빠가 손을 내밀어도 아이의 선택은 할아버지다. 순간 밀려오는 배신감을 억누르고 그냥 오늘은 편하게 가야겠다 생각하며 할아버지에게 맡겨버린다.
뭐 그래도 아쉬울 땐 아빠를 찾아주니 그거면 됐다.
6.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가 아니라 늦잠이 없어졌다.
다행인 건 우리 아이는 밤 잠은 중간에 깨지 않고 쭉 잔다. 그 덕분에 재우고 나면 늦은 밤 나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문제는 늦게 시작한 만큼 새벽 3시-4시에 작업이 끝날 때가 많다. 그제야 잠자리에 들지만 깨는 시간은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다. 아이가 깨면 아빠도 일어나야 한다.
낮잠을 자는 햇수가 줄어든 만큼 9시-10시 사이면 아이는 잠자리에 든다. 일찍 재우면 시간이 확보되어 좋지만 그만큼 일찍 일어나니 나의 수면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한 번은 아이의 기척이 느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체 고개를 돌리고 누워있었다. 그랬더니 어느새 옆으로 와 내 얼굴 위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더니 일어나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직 아빠, 엄마 정도밖에 말을 할 줄 모르니 대부분은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도 모른 체해보았지만 이내 아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래, 아가. 일어날게. 거실에 나가서 아침 우유 먹고 놀자. 그냥 아빠는 진하게 커피 한 잔 내려 먹으면 되지 뭐.
아빠가 되고 나서 나를 더 성장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아빠가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의 바람을 후 순위로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인생에 소중한 점을 찍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만큼 값진 시간이 또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주변의 육아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어차피 조금만 더 크면 더 이상 아빠를 찾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날이면 아빠에게 말도 걸지 않는 날이 올 거라고. 그러니 아빠를 찾을 때 더 많이 누리라고. 나의 지난 시절을 돌아봐도 사실 그렇다. 어느 날 어느 시점부터 나의 세계가 강해졌고 더 이상 아빠를 찾지 않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지만 이제는 곧 내 차례가 온다고 생각하니 벌써 슬쩍 가슴이 메어짐을 느낀다. 그러니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나는 오늘도 나의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빠라서 기꺼이 내려놓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