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면서 '아빠'로, '아빠'이면서 '나'로 살기

-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 말것이다!

by 알레

"이번 주에는 애기 엄마들하고 안 만나?"

"안 그래도 금요일에 애들 등원시키고 백화점 구경 가자고 해서 가기로 했어."

"재밌겠네. 잘 다녀와. 그럼 나도 금요일에 약속 잡아봐야겠다."


육아 중인 엄마들에게는 있고 아빠들에게는 거의 없는 것. 동기 모임. 조금 더 확장된 개념으로 접근해보면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한 여성이 엄마가 되면 순차적으로 커뮤니티가 생겨난다. 첫 번째는 조리원 동기 모임, 두 번째는 어린이집 엄마 모임, 세 번째는 유치원, 네 번째는 초등학교. 그 사이사이에 또 다른 사이드 모임들이 더해지다 보면 엄마들의 시간은 매우 촘촘하게 흘러간다.


나는 가끔 아내에게 40%의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다. "엄마들 놀러 오라고 해, 내가 커피 내려줄게." 안 그래도 아내가 어린이집 동기 엄마들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다들 반응이 "네? 안 나가시고 집에 계신데요?"였다. 그렇다. 난 그저 어딘가에 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현재 전업 육아 아빠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언제나 현실 모임에 대한 갈증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가 태어났더라도 남자들은 직장 생활을 이어가기 때문에 직장이라는 거대한 커뮤니티가 그 갈증을 해갈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퇴사 후 육아가 메인이 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사람과 사람의 실제적인 만남은 언제나 모자람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더 적극적이 된다.


그렇다고 정말 애기 아빠들끼리 자리를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그것도 참 어색하기만 하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자들끼리의 모임이 술자리라도 하지 않고서야 무엇으로 초면의 어색함을 깨뜨릴 수 있을까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난 뒤에야 뭐라고 하겠지만. 결국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음을 내려놓는다.








긴 머리의 남자가 머리를 찰랑거리며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일단 눈에 띄긴 할 것 같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애기 엄마들은 이미 내가 누군지 다들 알고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내 모습이 참 독보적이었겠구나 싶다. 매일 오전 오후 일정한 시간에 애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왔다 갔다 하는 머리긴 남자가 이 동네에서 흔한 경우는 아닐 테니 나를 기억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겠다 싶기도 하다.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혼자 피식 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이런 게 바로 퍼스널 브랜딩이지!'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한편으로 그게 그리 싫지는 않다. 적어도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나'라는 사람의 분명한 이미지 또는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퇴사 후 오랜 기간 별 소속이 없이 살아가다 보니 점점 나의 색깔이 사라져만 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 아이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건 수 백, 수 천, 수 만 번을 이야기해도 입이 안 아프지만 여전히 '아빠'와 '나' 두 마리의 토끼를 균형 있게 잡고 살아가고픈 간절함이 있다. 그동안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들이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여러 번 들어보았는데 이제는 그 고민이 나의 고민이 되었다.


육아 아빠가 되고 나니 그동안 별생각 없이 흘려보냈던 장면들이 더 이상 상관없는 모습들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를 등원 또는 등교시키고 아침부터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의 모습, 주말 또는 휴일 그 번잡한 시간에도 쇼핑몰에 유모차를 끌고 나와 빙빙 도는 모습, 그리고 아이가 없는 그 시간을 쪼개어 쇼핑이든, 운동이든, 집안일 외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이제는 공감이 가는 나의 삶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나름대로 몸부림치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육아가 시작된 후 나의 세계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만큼 아이의 세계가 커진다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아져버린 나의 세계에는 '누군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과 '살고 싶었던 나의 삶의 모습들'마저 작아지는 것 같아 슬퍼질 때도 있다. 이럴 때면 더 부여잡고 싶어 하루를 몸부림치게 되지만 '아빠'와 '나' 사이의 균형이 깨지면 결국 어디 한쪽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받게 됨을 알게 되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둘 사이의 균형을 지키며 각각의 영역을 최대한 확장시킬 수 있을까.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는 것은 욕심인 것일까. 매일 이 고민뿐이다. 초보 아빠여서 그런지 아직 나에게는 둘 다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남아있다. 부디 그 희망이 헛된 희망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잘 해낼 것이라는 긍정의 생각으로 나를 채우며 또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