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없는 육아는 없습니다.

- 아름답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은 육아생활

by 알레

어느덧 17개월. 아이는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신기할 정도로 말귀를 다 알아듣는다. 부모 맘이 다 그렇듯 내 아이가 천재 인가하는 착각이 슬몃 드는 순간이 잦아지는 것을 보니 그만큼 아이가 많이 컸다는 소리다. 육아 선배들은 늘 입버릇처럼 '누워있을 때가 행복한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땐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던 초보 아빠는 그저 아이가 얼른 걷기 시작해 아빠 손을 잡고 동네 산책을 다니는 부픈 꿈만 꾸며 하루하루를 보냈더랬다.


걷기 시작하고 점점 걸음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집안 구석구석 잘도 돌아다닌다. 기가 막히게도 먼지 구덩이인 곳들만 잘도 찾아낸다. 책상 아래 뒤엉켜있는 코드 선들, 평소 잘 닦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앉은 전자 기기들, 자리가 없어 집 안 한 귀퉁이에 세워둔 유모차 바퀴, 청소기 등 제발 건드리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만 잘도 골라 만진다. 얼른 쫓아가 번쩍 들어 거실로 데리고 오면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짜증을 내는 아들.


치솟는 스트레스를 다스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심호흡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이 타이밍에 이런 소리가 참 어색한 전개인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통해 얻어지는 행복감이 큰 것은 사실이다. 단지 순간 급 상승하는 분노가 존재할 뿐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유난히 안경을 공격한다. 눈이 나쁜 나는 안경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나의 안경이 하필 내 아이에게 장난의 대상이 돼버렸다. 하루에도 수차례 아이는 아빠의 안경을 순식간에 낚아채 집어던진다.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결국 아이에게 윽박지르지만, 그런 날이면 언제나 밤중에 혼자 후회한다. '내 얕디 얕은 인내심을 어찌할까.'


아이와 일차적으로 부딪히며 생기는 일들은 그래도 지나면 쉽게 잊히곤 한다. 그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크게 다가올 때다. 나는 여전히 무엇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 살아갈 방법을 찾아 매일 고민한다. 경제적 기반이 불안정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산만해진다. 돈 버는 것과 관련하여 후킹 하는 콘텐츠를 보면 궁금해서 상세 페이지를 훑어본다. 그렇게 시작하여 연관된 콘텐츠들을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시간이 훅 가버린다.


방법을 찾고 싶은 마음이 워낙 간절하니 쉽사리 후킹 당하는 지금의 내가 참 애처롭기도 하다. 그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나의 내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의 쏠림을 이겨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시간은 금이라는데, 육아 중에 시간은 금보다 더 귀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평일은 그나마 내 시간이 있지만 주말 동안 아이의 낮잠시간에는 그야말로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그런 시간에 알고리즘에 후킹 당해 시간을 날려버리고 나면 그 답답함은 몇 날 며칠 지속된다. 그리고 마음속은 오만 짜증으로 가득해진다.


육아를 할 때 부모의 주요 관리 대상 중 하나는 체력과 마음이다. 체력이 부족하면 급성장하는 아이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행동들을 담아낼 수가 없다. 육아 스트레스는 결국 이 두 가지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더 최악인 것은 이로 인해 나의 짜증이 아이를 향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그게 또 내 맘 같지 않다.


이 둘을 채우기 위해 운동과 필사를 시작했다. 주어진 여유시간에 해야 할 일이 많아 거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운동만큼은 언제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체력은 육아와 자기 계발의 밸런스를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다음으로 미뤄왔다. 이제는 더 미뤘다간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필사하는 시간은 주로 늦은 밤이다. 오랜만에 호흡을 가다듬고 손 끝에서 시작하여 온 몸에 힘을 준다. 워낙 글씨를 못쓰다 보니 손이 저려오지만 노트를 채우고 나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덤으로 좋은 문장을 통해 삶의 위로를 얻게 되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하루의 필사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새벽녘이 되고 그제야 하루의 번뇌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아이를 재우고 가끔 아내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순간의 화를 누르지 못하고 아이에게 욱 할 때마다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고. 잔상처럼 머리에 남고 마음에 남아 나를 반성하게 한다. 오늘 하루를 후회하게 만든다. 더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보듬어 주고 싶은데 내 화를 아이에게 쏟아버렸음이 언제나 미안함으로 남는다.


내일은 좀 달라져야지 늘 마음 먹지만 아이의 창조적 행동은 밤새 누그러뜨린 빡침의 샘이 다시 솟아오르게 만든다. 자식을 키운다는 게 참 그런 것 같다. 돌아보면 나의 부모님도 그러셨겠구나 싶다. 그래서 내리사랑이라고들 하셨구나 생각하게 된다.


육아는 아이를 키움과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아이와 부모는 결국 서로를 성장시킨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감당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지만 견딤의 시간을 통해 1차적으로는 서로를,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람을 이해하는 성숙을 경험한다.


스트레스 없는 육아는 없지만, 그 덕분에 오늘도 내가 한 뼘이라도 자랄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육아가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