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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식물 생활

- 식 집사 이긴 합니다만 집사 노릇은 잘 못하고 있습니다.

by 알레

한 때는 집에서 나와 함께 지내던 식물들이 50가지가 넘었다. 원예 회사에서 일했던 지난 5년 동안 농장을 다니고 매장을 둘러보면서 하나 둘 분양받은 것들이 집 안을 초록 초록하게 채워 주었다. 집에 있는 식물들을 분갈이해줄 때가 되면 50리터짜리 원예용 상토 한 포대와 마사토, 화산석 등 마치 식물 가게에서 자재를 준비하듯 트렁크 가득 싣고 왔었다.


한 때는 나도 식 집사로 애정을 가지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늦봄이 되고 여름을 향해가니 기온은 올라가고 베란다의 습도도 제법 올라가는 요즘이다. 몇 안되지만 가지고 있는 식물들은 대체로 동남아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들이다. 그러다 보니 온도와 습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왕성한 생육 활동이 시작되었다.


필로덴드론 엘레강스, 필로덴드론 기가스, 필로덴드론 실버 메탈, 필로덴드론 소디로이, 필로덴드론 미칸, 몬스테라 델리시오사, 몬스테라 에스쿠엘레토, 라피도포라 테트라스페르마, 안스리움 클라리너비움, 베고니아 스노우캡, 올리브 나무, 천리향, 유포르비아 알루아우디, 청화각, 아보카도, 선인장 몇 가지.


현재 우리 집 베란다에서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적어보았다. 그래도 아직 이름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애정이 남아있긴 한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나는 식물 생활을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하긴 한다. 나름 식테크도 해보겠다고 이파리 한 장에 몇십만 원 하는 식물들도 구입했었다. 위에 적혀있는 아이들의 반 이상이 이 정도의 몸 값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다행히 똥 손은 아니라서 죽이지 않고 잘 기르고는 있다. 그러나 팔지는 못했다. 막상 자라는 것을 보니 '더 자라면 어떤 모습일까', '더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버려서 고스란히 집에 두고 있게 되었다.


그랬던 나였는데 어쩌다 애증의 관계가 돼버린 걸까.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라 할지라도 막 다룰 수 없는 것은 이들도 엄연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중요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방전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아이와의 시간이 끝나면 그다음은 집안일 그리고 나의 할 일들이 순차적으로 시작된다.


마음이 온통 다른데 쏠리면서 점점 식물들에게 손길이 뜸해지게 되었다. 신경은 쓰이니 오다가다 물을 줘야 할 때인지 흙을 만져보긴 한다. 잎의 상태를 보며 분무를 해주기도 하고 필요할 땐 약을 치기도 한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 아이도, 식물들도 적정량의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의 비중이 아이에게 집중되다 보니 아무리 물을 준다한들 식물들의 상태는 점점 죽지 않아 살아있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어쩌다 물 주는 시기를 지나쳐버리면 어느새 잎은 점점 타들어가듯 말라가기 시작했다.


지난겨울에는 잠깐 베란다 문을 열어두었다가 훅 들어온 찬 바람에 잘 자라던 몇몇 아이들이 냉해를 입어 다 잘라버려야만 했다. 현재 상순만 물꽂이로 겨우 살려둔 상태다. 어떤 날은 물이 부족해 잎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도 귀찮아서 그냥 지나친 적도 있었다. 심정지 직전에 겨우 살려냈다.


그런가 하면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거실 한쪽 구석에 있던 화분이 장난감에 부딪혀 떨어져 깨진 일도 있었다. 다행히 얼른 수습한 덕에 아이도 다치지 않았고 식물도 손상되지 않았지만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식물을 향한 아이의 호기심은 점점 적정선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언제든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날이 따뜻해지자마자 겨우내 집 안에 있던 화분들을 모두 베란다로 내다 놓았다.


볕이라도 좋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삼아 보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과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다. 어느새 애정은 애증이 되어버렸다.








봄이 되면 분갈이를 해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예전처럼 원예용 상토 50리터 한 포대를 사 왔다. 사 온 지 벌써 두 달이 흘렀지만 여전히 포대를 뜯지 않은 채 베란다 한쪽 구석에 세워 두었다. 오늘은 해야지, 이번 주는 시작해야지, 이번 달은 꼭 완수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시작조차 안 하고 있다. 집 안에서 분갈이 작업을 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힘들고 불편하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귀찮아서, 허리가 아파서, 피곤해서, 다른 우선순위들이 있어서. 하지 않는 것에는 언제나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여러 가지 중 선택하지 않은 것들은 결국 지금 선택한 다른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다. 이전의 나였으면 진작에 화분갈이를 했을 것이다.


가끔 주위에서 나에게 이야기한다. 식물을 좋아하니 식물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보라고. 또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식물 집사예요', '식물 전문가예요'라고 말할 때면 혼자 뜨끔하게 된다.


마음을 다 접은 것도 아니고 정리하고픈 마음도 없고, 여전히 새 잎이 나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만 식 집사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 그저 미안함만 커져간다. 이번 달은 다 지나가기 전에 흙을 갈아줘야겠다. 그리고 하나 둘 더 좋은 주인이 있다면 분양해서 잘 클 수 있게 해 줘야겠다.


이제 그만 놓아줄 때가 되었나 보다. 아, 애증의 식물 생활. 글을 쓰고 나니 괜히 마음만 더 쓰인다. 내일은 아침 일찍 살펴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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