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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판매합니다.

- 또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

by 알레

한 동안 뜸했던 블로그에 접속했다. 한 때는 식물 생활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하기도 했던 나의 블로그. 이제는 마치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여기저기 녹이 슨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가게 같다고나 할까. 오랜만에 블로그에 방문한 이유는 여태 팔지 못해 가지고 있는 식물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식물 집사들은 대체로 개인의 블로그를 통해 거래를 많이 한다. 또는 오프라인 식물 마켓에 셀러로 참여하거나 아니면 중고 판매 사이트, 식물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도 거래를 한다. 대체로 매출을 올리는 분들은 꾸준히 판매자로 활동을 해온 분들이거나 구하기 힘든 레어템을 보유한 분들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존재다.


역시나 오랜만에 올린 식물 판매 소식에 댓글은 하나도 달리지 않는다.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블로그 역시 그간 활동하지 않는 내 글을 노출시켜주고 싶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한참 활동할 때도 식물 얘기보다는 자기 계발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니, 이제 와서 무슨 기대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싶다.


한때는 오래도록 기르며 더 크고 더 멋지게 만들어 보고도 싶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식물의 성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그 멋들어진 자태가 탐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농장에서 재배해도 그만큼 완벽한 모습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저 바람일 뿐이다. 아니 사실 그보다는 그냥 호기심이 더 컸다.



Tylor’s Instagram profile post_ “Posting this beauty again bc some plants are too good not to_ Philodendron elegans, a wonderful climbing aroid that gets more lacy the more…”.jpeg 필로덴드론 엘레강스. 상상만으로도 벅차오른다.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그런 아이들을 극구 처분해야 하는 이유는 장담컨대 두 돌이 코앞으로 다가온 아들의 호기심에서 무탈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 뭐야?'를 연신 되풀이하며 만져보고 당겨보고 입으로 물어보기를 서슴지 않는 아들이기에 머지않아 베란다에서 집 안으로 들여야 하는 식물들의 앞날이 심히 염려스럽다.


결과적으로 팔아넘기는 게 답이다. 더 잘 기를 수 있는 식 집사님에게 분양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팔아야 할까. 막막하다.


이제는 10월도 마지막 한 주를 남겨두고 있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밤 사이 심할 땐 베란다 온도가 10도 초반까지 내려가곤 한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식물들의 원산지를 생각해보면 이 아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난 또 몹쓸 짓을 하고 있다.


심정이 복잡해지니 별 생각을 다한다. '식물 진열장을 만들어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조명과 함께 둘까'하는 생각부터 '베란다 창에 방풍 작업을 촘촘히 해볼까'하는 생각까지. 참고로 우리 집 베란다 새시는 옛날 아파트에 있는 알루미늄 프레임 그대로여서 겨울에 스미는 찬 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어쩌다 이렇게 몹쓸 식 집사가 돼버렸을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하는 때 지난 반성을 해본다. 어차피 육아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고도 모자라는 판국에 관심을 나눠 줄 여력도 없었으면서 괜한 찔림이 밀려든다. 차라리 베란다라도 온도 유지를 해줄 수 있다면 내년 봄 까지 어떻게든 살려볼까 하는 미련도 가져보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일 듯싶다.


이제 머지않아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올 것 같다. 어떻게든 분양을 성공하던가 아니면 기를 쓰고 살려내던가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겨졌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아주 세속적인 기대를 잠시 가져본다. 궁지에 몰리니 사람이 참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싶다.


어느새 또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식물 집사의 마음은 그저 분주함과 함께 애처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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