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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녹색 맥박은 나를 부른다

-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원예 활동을 추천합니다.

by 알레

태생적으로 도시 생활이 몸에 배어있는 나의 삶을 가만히 더듬어 보면 어릴 적 동네에는 자그마한 동산이 있었다는 것이 떠오른다. 세세한 풍경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봄이면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해 온 동네가 매우 푸르렀고 곳곳의 지면에 만개한 이름 모를 꽃들은 봄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아마 야생화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들에 가보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세월만큼 자란 나무들이 풍성함을 자랑하며 곳곳에 빼곡하게 심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늘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한 번은 신축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어 이사를 간 적이 있었다. 분양 후 첫 입주였던 아파트였던 터라 단지 내의 조경은 매우 정갈했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조경수들은 옮겨 지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파리로 푸르러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뿌리를 뻗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겨울이면 식물들이 물을 내리고 잠을 잔다고 한다. 그래서 큰 나무 들일 수록 생육 활동을 멈춘 겨울에 캐내는 것이 안전하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니 아직 활착 되지 못한 뿌리가 양분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음이 눈에 띄었다. 온전히 트지 못한 새 순들은 이내 쏟아져 내렸다. 나무들의 몸살을 보고 있자니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오래된 동네. 거의 30년 가까이 된 동네의 정경은 왠지 포근했다. 마치 오래전 살 던 동네에 다시 돌아온 것처럼 3층, 4층 집 베란다까지 닿을 듯 커버린 아름드리나무들은 존재 만으로도 이곳이 안전지대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어 준다. 신축 단지처럼 정갈한 조경은 없지만 숱한 세월을 보낸 나무들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만약 인간이 나무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한 동네의 역사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깊게 뿌리를 뻗은 나무들은 생채기가 나도 회복하는 힘이 있다. 잘려 나간 가지에서는 또 다른 생명이 피어오르는 것을 볼 때면 자연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활력을 읽고 살아가는 도시 생활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는 듯하다.






도시 생활권에서 나만의 정원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도심 곳곳에 공원이 있지만 내가 직접 가꾸는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공원은 사실상 전무하다. 물론 바라보고 거니는 것도 좋지만 원예 활동을 시작해보는 것은 삶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원예는 수동성을 능동성으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효능감을 준다. 사무직 근로자의 경우 하루 일상을 돌아보면 거의 대부분은 한 평도 안 되는 책상에 앉아 그보다 훨씬 작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온 신경을 다 끌어올린다.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삶의 형태에 익숙해진 직장인들일수록 신경쇠약이라는 소위 문명의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업무에 시달려 매일을 살다 보면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생각지 않은 순간에 발견하게 되는 예민함은 까칠함이 되어 심할 경우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로까지 번지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원예활동은 하나의 숨구멍이 되어 준다. 원예 활동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돌보는 일이다. 생명을 돌보는 일은 관심과 정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원예는 개인이 흙과 가까워지고, 대자연과 가까워지고,
아름다움과 가까워지고, 성장과 발전의 수수께끼와 가까워지는 활동이다.
- 칼 메닝거 (Karl Menninger)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칼 메닝거는 2차 대전 후 트라우마를 겪은 퇴역 군인들을 치료하면서 환자들이 원예활동을 통해 생명을 향해 다시 마음을 여는 모습을 관찰하였다고 한다. 원예 활동을 할 때면 실제로 어딘가 완고했던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흙을 만지고 흙에 올라오는 냄새를 맡다 보면 자연의 품에 안겨있는 기분이 든다. 조심스럽게 작고 여린 생명체를 다루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도시 생활이 '신경 긴장, 과잉 불안, 조급증, 짜증'이라는 열매를 생산해낸 다면 원예 활동은 '정신적 에너지의 회복'과 '집중력 강화'의 시간이 되어 준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긴장과 불안이라면,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이 하루를 마치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면 식물 생활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금씩 내 마음이 보듬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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