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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인 동시에 현실인 식물 생활

-당신은 어떤 환상 속에서 살고 있나요

by 알레

식물 마켓에 가보았을 때 보았던 잊히지 않는 가격표가 하나 있다. '잎 한 장 당 50만 원.' 그 아이는 보통 잎이 4-5장 정도 달려있었다. 다시 말해 화분 하나 구입하는데 200만 원을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식물 생활에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본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식물이다. 몬스테라 보르시지아나 알보 바리에가타(Monstera Borsigiana Albo Variegata) (a.k.a 알보몬). 이 금액을 지불하고 사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의 원리는 차치하고 식물 자체만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 알보몬은 그만한 아름다움을 가진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huy-phan-NicHoXksB9Q-unsplash.jpeg 몬스테라 보르시지아나 알보 바리에가타. 사진 속 알보몬은 200만원을 족히 넘을 사이즈로 보인다.


이미 마니아 시장에서는 무늬종들의 거래가 나름 활발하다. 넘치는 수요에 비해 아주 제한적인 공급에 따라 몸값이 기본 20-30만 원부터 몇 백을 호가하기도 한다. 심지어 굵은 줄기에 기근(줄기에서 나오는 뿌리)이 형성되어 있는 상태만으로도 족히 20-30만 원을 지불해야 구입할 수 있다. 우리 집 식물 중에도 그렇게 모셔와 애지중지 기른 아이도 있다.


코로나 시대의 집콕 생활로 인한 식물 수요의 증가세와 더불어 각종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의 발달로 개인 간의 거래가 활발해진 덕분에 일찍이 이 분야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소문에 의하면 월 1000만 원도 수익을 낸다는 말도 있다.


식테크(식물 재테크)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더 많은 사람들을 혹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주로 수요가 있는 식물들은 대부분 몬스테라 속, 필로덴드론 속, 안스리움 속 식물들이다. 비싼 몸 값에 비해 아이러니 한 점은 이 식물들의 경우 몇 가지 환경만 조성해주면 대부분 죽지 않고 잘 살아난다는 점이다. 심지어 분주(식물의 개체를 나누는 것)도 까다롭지 않아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번식시킬 수 있다. 그래서 식테크가 가능하다.


생육 기간만 아니면 나름 괜찮은 아이템이다. 식물을 구입하는 노력과 비용에 대한 초기 투자가 다소 높을 뿐 환경을 구축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충분히 최소화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기근 하나라도 구했다면 이제부터 돈이 열리는 식물에 대한 환상을 꿈꾸면 된다. 잘 살려내서 잎 한 장이 올라오는 순간 적어도 30만 원 이상의 값으로 되팔 수 있다. 이런 계산이라면 또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올라올 때마다 말 그대로 돈이 열리는 것이니 초기 투자비용으로 200만 원 들이는 것이 그리 아깝지만은 않을 것이다.






삶에는 언제나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이 동시에 존재한다. 안정적으로 보이던 직장의 월급이 더 이상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대를 사는 요즘은 어떤 방식으로든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뛰어드는 모습을 자주 본다. 식테크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월 1000을 찍었네, 또 누구는 월급 외 매달 150-200만 원 정도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네 하는 식의 말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속내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녹록지 않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투자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존재하듯 공산품이 아닌 식물은 환경에 대한 변수가 다양하다. 제 아무리 신경을 써도 우리 집 환경이 끝까지 안 맞을 수도 있다. 또 살아있긴 한데 상품성이 약한 상태로 계속 자랄 수도 있다. 가령 잎의 특징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든가 계속 새 잎은 올라오는데 나오는 족족 잎이 누렇게 변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 생활에도 나름의 공부가 필요하다. 재테크의 목적이든 반려 식물이든지 우리 집 환경이 내가 들이려고 하는 식물들의 생육 환경과 잘 맞는지 사전에 검토해보는 것이 좋다. 또한 나의 삶의 패턴도 점검해보아야 한다. 반려 동물 보다야 손이 덜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식물도 동물들 못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물 주는 시기, 병해충 예방 시기, 온도나 습도가 변하는 시기를 놓치면 어제까지 건강하던 식물도 금방 초록 동산으로 가버릴 수 있다.


식물 생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불과 얼마 전 한파에 미적거리다가 베란다에 있던 초록이들 몇몇을 떠나보내버렸다. 그동안 식 집사라고 이야기하던 나는 그 순간 식물 연쇄살인마 또는 저승사자가 되어버렸다. 뒤늦게라도 집 안으로 들였지만 이미 냉해를 입은 줄기와 잎은 시간이 갈수록 그 상처가 명확해지고 있어 마음만 쓰라릴 뿐이다.


처음 식물 생활을 시작할 때 나에게도 식테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나름 똥 손은 아니라고 자부하기에, 게다가 당시에는 원예 회사에 재직 중이었으니 자신감 하나는 충분했다. 그러나 막상 집에서 식물을 길러보니 나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방치하듯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아이가 생기고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점점 힘에 부쳐 초록이들을 극한의 상황까지 방치시켰다가 심폐 소생술로 겨우 살려내는 식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제 겨울을 지나면 대부분 정리해볼까 한다. 정서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모두를 정리할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으로만 남겨둘 예정이다. 스스로 돌보지 못해 죄책감이 쌓여가는 것보다야 판매할 것은 판매하고 나눔을 할 것은 나누어 주는 게 더 합당한 판단이라 생각한다.


나의 환상은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환상의 일말은 남겨둘 것이다. 지금은 그저 때가 아닐 뿐, 그래도 식물 생활은 언제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함께 다시 시작해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언젠가 지난날의 상상처럼 마음의 정원이 눈앞에 현실이 되길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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