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정원을 가꾸어 봅니다.
오전 6시. 알람이 울린다. 아직 아내와 아기가 자고 있는 방에서 조용히 나와 화장실로 향한다. 세수를 하며 남겨진 잠을 마저 쓸어내린 후 주방으로 가서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신다. 익숙한 행동 패턴대로 블루투스 스피커의 스위치를 켠다. 그리고 스트리밍 앱을 열고 Eddie Higgins의 연주곡 Over the Rainbow를 틀어놓는다.
이번엔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해본다. 전기 포트에 물을 올려 온도를 맞춰 놓은 후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갈아준다. 드립퍼와 서버를 준비하고 따뜻한 물을 필터에 걸러 적셔준다. 물이 다 끓으면 갈아놓은 원두를 필터에 붓고 천천히 핸드드립을 시작한다.
커피를 내린 후 어떤 빵을 먹을지 잠시 고민한다. 오븐에 빵을 구워 샌드위치를 해 먹을까, 그냥 전날 사둔 크림이 들어있는 바게트를 먹을까. 귀찮으니 바게트로 결정했다. 식탁에 앉아 방금 내려 김이 살랑살랑 올라오는 커피와 바게트를 먹는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Eddie Higgins의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을 다 먹고 나면 베란다로 나가 식물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늘 그랬듯 물이 부족해 보이는 아이에게는 물을 가득 주고, 하나씩 잎의 상태를 살피며 혹 불청객이 나타난 건 아닌지 잘 살펴준다. 다행히 아무 문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쯤 하고 나니 어느새 1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다른 것보다 식물들을 살펴보는 것은 늘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식물이 많아서도 그렇지만 하나씩 살피는데 그만큼 꼼꼼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일일점검이라도 하듯 모닝 루틴을 하고 나면 이제 소파에 앉아 책을 펼친다. 그리고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독서를 한다.
참 꿈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런 상상을 한다. 나의 아침은 이렇게 여유롭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낸다. 좋아하는 음악, 커피 한 잔, 빵 한 조각, 그리고 식물과의 교감 시간과 독서까지.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어렵다.
육아가 시작되기 전 가끔이지만 주말에 이런 아침을 보내기도 했다. 적어도 음악과 커피, 빵, 식물 까지는 나름 챙기곤 했었다. 아이가 태어나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에게는 그저 꿈같은 소리이다.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전부터 식물이 가득한 집을 상상했었다. 해가 잘 드는 곳이 거실 벽면에는 선반을 달아 작은 크기의 화분을 쭉 놓는다. 칼라데아 속 식물들과 필로덴드론 속 식물들을 나란히 놓아본다. 마치 외국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거실 한쪽 벽면은 스킨답서스가 타고 올라 천정까지 멋지게 뻗어나간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또 한쪽 구석에는 예술적인 무늬가 들어간 대형 몬스테라와 느낌이 잘 맞는 거실 스탠드가 놓인 그림을 그려본다.
이왕 상상하는 거 좀 더 나가보면, 거실 바닥은 발리 느낌의 라탄 소재로 된 러그와 소파 테이블이 있고 편안한 소파는 언제나 누워 쉴 수 있을 만큼 아늑하다. 창을 열면 멀리 바다와 숲이 보이고 평온한 바람이 솔솔 집 안으로 향해 들어온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돌리면 아늑하게 집안으로 스며드는 햇살에 기분마저 따뜻해진다.
맞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상상일 뿐이다. 나의 현실과는 참 동떨어진 모습이다. 그럼에도 상상을 글로 써 내려갈 때면 마치 현실이 되어 버릴 듯 기분이 설렌다. 현실에서 내가 듣는 음악, 아침마다 내리는 커피, 그리고 베란다에서 초록 잎을 열심히 뽑아내는 식물들이 실제로 함께 하기에 상상이 상상 같지만은 않다.
현실적 소재를 가지고 상상을 해보다 보면 그 자체로 행복감을 경험한다. 마치 그런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느낌을 받는다. 전보다 자주 이런 상상 가운데 빠져 들어간다. 육아를 하며 보내는 일상이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틈이라는 것을 찾기가 참 어렵다. 물리적 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만의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들, 꿈꿔왔던 것들, 소박해도 일상적인 것들, 행복감을 느꼈던 순간들을 잘 녹여 공간을 차곡차곡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안전지대가 생겨난다. 좋은 것은 그 모양새나 구성, 날씨, 느낌을 순식간에 바꿔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루할 이유도 없다. 그곳에서도 난 언제나 식물과 함께한다.
식물 회사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식물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는 식물은 나의 삶의 일부가 되어 마음의 정원으로 떠나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준다. 식물 생활을 하면서 유난히 초록이 좋아졌다. 지루하지도 않고, 투명하기까지 한 초록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아이가 자라며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초록 식물들이 언제까지 집 안에서 함께 머무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하나 둘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이의 손이 닿기 전에 정리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정말 벽면에 높이 선반이라도 달아 화분을 올려놓을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이제는 식물을 기르는 마음조차 아이에게 쏟아부어야 하는 시기가 왔으니 잠시 이별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더 고이고이 마음의 정원에 담아둔다. 그곳에서는 항상 푸른 모습으로 잘 자라나고 있을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