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
퇴고의 시간이 끝났다. 쓰라림을 맛보았고 뒤이어 후련함도 경험하였다. 감성에 취해 휘갈긴 것을 두 눈 부릅뜨고 이성으로 읽어보니 내가 나에게 회초리를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빼고, 또 빼기를 반복했다. 지웠다 복구시키기를 또 반복. 마감 기한이 없었다면 퇴고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글은 미완성 교향곡이 돼버렸을지도.
돌아봄의 첫 번째 감정은 언제나 마주 보기 싫은 저항 심이다. 나를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유쾌하지는 않다. 녹음된 나의 목소리를 거리낌 없이 듣기까지는 수년이 걸린 듯하다. 셀카를 찍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글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면서 여태 퇴고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늘 가볍게 쓴다는 말에 다시 읽어보기 싫은 마음을 감춰뒀던 모양이다.
저항은 보통 마감이 임박해야 멈춘다.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살 방법을 타협한다. 써 놓은 글을 꺼내어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길지도 않은 것을 몇 시간에 걸쳐 읽었다. 못나도 내 자식은 그저 예쁘기만 하듯, 되려 내 글에 감탄하고 앉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지 않아 충격적인 답을 들었다.
작가님, 글이 재미없어요. 쓸데없이 장황해요.
정신이 확 깨버렸다. 내 눈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길래.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느낀 이유를 듣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저항군은 완전한 백기를 들었다. 그제야 또렷한 정신으로 내 글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한발 물러서니 알겠다. 나조차 지루할 정도였으니.
몇 시간을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있었다. 끼니도 걸렀다. 흐름이 깨어지는 것도 싫었지만 배가 부르면 어쩐지 집중력이 흐트러질 것만 같았다. 커피만 한 잔 가득 담아 방에 들어왔다.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머리로 읽어가는 동안 손가락은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렸다. 퇴고를 위해 각자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때만큼은 환상의 팀워크를 보였다.
두 번째 퇴고를 마무리했다. 총 분량이 3페이지나 줄었다. 진이 빠졌다. 그리고 급격한 허기가 몰려왔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 일단 제출했다. 마치 일찌감치 시험문제를 다 풀어놓고 한 문제 가지고 끝까지 씨름하다가 '에이,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끝냈다. 처음보다 읽기에 불편함이 덜한 게 느껴졌다. 나름 잘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올라왔다. 마치 한 주 동안 내내 열심히 한 것마냥, 기분은 나를 착각하게 했다.
합평 시간을 앞두고 인쇄한 최종본을 준비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웬걸. 내가 이러려고 삼색 볼펜을 샀나. 빨간펜의 흔적이 난무했다. 잘 보이지 않던 나의 불필요한 습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종본이라고 인쇄한 종이 위에는 돼지꼬리와 삭제 표시, 줄 바꿈, 그리고 수정할 문장까지 빼곡했다. 이쯤 되니 남의 글을 보듯 하게 된다.
저항과 수용에 이어 세 번째 감정이 등장한다. 비판이다. 이제는 관대함 따위는 없다. '글'도 '나'고 '나'도 '나'인데 자아가 분리된 듯 '너는 너' '나는 나'의 마음으로 세 번째 퇴고를 시작했다.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사실 퇴고를 두고 한 말인가 싶었다.
처음으로 나의 글을 진지하게 마주해본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잘하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완벽주의는 아니지만 아직은 마땅한 나만의 기준이 없기에 보고 또 보면 계속 새로운 게 보인다. 미완의 작품을 남기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니 적절한 선에서 힘을 뺀다.
선배 작가님들은 퇴고의 시간이야말로 급성장기라고 한다. 이제야 이유를 알겠다. 퇴고는 나의 글을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또렷이 보게 한다. 글쓰기를 넘어 나를 고찰하게 되는 시간이 퇴고의 과정임을 깨닫는다.
장담컨대 세 번째 퇴고 과정이 끝나더라도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어보면 또 아쉬운 점이 보일 것이다. 완벽할 수 없기에 아쉬움은 아쉬운 대로 남겨두는 것까지가 퇴고의 훈련 과정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글쓰기에 다시 희열을 느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