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과 집중을 위한 삶의 가지치기
장맛비가 세차게 내린다. 집을 나서 카페로 왔다. 널찍한 베이커리 카페에는 이미 비 내리는 오후를 보내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평소 같음 오지 않았을 소란스러운 카페. 활짝 열어놓은 창 너머로 들어오는 세찬 빗소리에 소란은 잠잠하게 느껴진다. 비 내리는 날 오후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서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 편이라 사실 망설이긴 했다. 그럼에도 나오길 잘했다고 느끼는 것은, 때론 내 속에 사람들의 소란을 채워줄 필요도 있겠다 여겼기 때문이다.
오늘도 딱히 주제를 정하지 않고 생각을 적어 내려간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과 손이 즉흥 연주를 하듯 풀어나갈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 짝이다. 근래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자주 다니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일정이 격주로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즐거운 추억을 쌓는 만큼 몸이 피곤해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든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지만 집을 나선건 오늘은 꼭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강한 의지의 실천이기도 하다.
그동안 목요일이면 목요진(목요일 라이프 매거진)을 발행했다. 한 주간의 삶을 돌아보는 주간 회고를 목적으로 시작했던 목요진은 점점 떠오르는 주제에 따라 생각을 전개하게 되었다. 어느새 20호를 발행했고 그동안 주야장천 52호를 발행할 때까지 기록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공식적으로 목요진의 휴재를 결정했다.
목요진이 그리 유명한 매거진도 아니고, 많은 독자를 보유한 것도 아니기에 그냥 조용히 넘어가도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목요진의 첫 번째 독자이며 영원한 찐 팬인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여 공식 입장을 남겨본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미련하게 붙잡지 말자.' '꾸준함이 무기이고 나의 재능이지만 굳이 미련해지지는 말자.' 목요진을 휴재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처음만큼 재미있지 않아서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혼자서 끌고 가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굳이 목요진이라는 이름으로 묶지 않고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에 이르니 이쯤에서 멈추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와 더불어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가지치기이다. 육아와 자기 계발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 확보가 필요하다. 글쓰기, 독서, 필사, 사진, 공부, 운동 등 어느 한 가지만으로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아니, 항상 시간이 모자라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간 확보를 위해 지금 나에게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떠올려보며 하나 둘 가지치기 중이다.
가지치기를 위해 '나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니 '가족'과 '일'로 정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것들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육아를 하다 보면 불만족스러움이 그대로 투영돼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됨을 경험했다. 그래서 내려놓을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최근 재미난 콘텐츠를 하나 보게 되었다.
이 한 장의 이미지가 너무나 나의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퇴사하기 전부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삶의 방향을 차고 있었지만 여전히 제자리인듯한 나의 상태. 난 여태 이 뫼비우스의 계단 걷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경제적 불안정과 시간의 불안정이 더해지면서 스스로를 이곳에 가둬버렸음을 깨닫게 되었다.
불안정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하기 위해 정리의 기술이 간절해지는 요즘이다.
목요진의 휴재는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더 중요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위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삶을 돌이키면 혼자에서 둘이 되었을 때, 그리고 셋이 되었을 때, 그로 인한 행복이 쌓여가는 만큼 나에게 집중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한쪽의 갈증이 채워지니 반대로 다른 한쪽의 목마름이 커져만 가는 요즘이다.
인생에 모든 것을 비등하게 만들어줄 완벽한 균형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한쪽에 집중되면 중심점이 이동하여 균형을 맞춰줄 뿐이다. 그동안 내가 빠져있던 오류는 완벽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오만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지금이야 말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인 듯하다. 생각의 가지치기를 통해, 불안도 가지를 쳐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