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상태
한참을 침묵하였다. 두 눈을 감고,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은 채 미동조차 없는 상태로 그렇게 한참을 말이다. 이윽고 점잖게 감았던 눈을 떴다.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결심이 섰다는 것을.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자발적 침묵의 상태로 향하게 된다. 침묵은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상태이다. 가장 고요한 상태이며 가장 평온한 상태이다. 반면 살다 보면 간혹 침묵을 강요받게 될 때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고요하고 평온한 것이 두 경우 모두 유사해 보이지만 강요받은 침묵의 내면은 여전히 소란하다. 오히려 소란이 더 커져버려, 내뱉어지지 않는 외침이 온몸을 맴돈다. 제 풀에 지칠 때까지.
침묵 상태에 접어들면 주변 소리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세상으로부터 잠시 멀어지고자 침묵해보지만 주변의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 결국 침묵이 깨져 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침묵을 위해선 주변마저 고요한 곳에 머무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나의 침묵은 보통 두 가지 상황에 따라 나타난다. 하나는 외부의 소음으로 인해 내가 침묵하는 게 낫겠다 싶을 때고, 다른 하나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을 때다. 첫 번째 상황에서는 소음의 정도가 골이 아플 정도일 때 나타난다. 그럴 땐 내 목소리의 울림조차 두통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극도로 예민해질 때 간혹 그렇다.
다른 한 가지 경우는 최근 들어 자주 경험하게 된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할 땐 어김없이 나의 음성은 묵음 모드로 전환시켜놓는다.
경청을 주제로 글을 쓰려하다 보니 자꾸 침묵으로 생각이 흐른다. 왜 그럴까. 잘 듣기 위해선 말 수를 줄여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소리’라는 것이 꼭 귀로 들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하다. ‘무언’의 상태에서도 무수한 말들이 마음속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소리 없는 말들은 그냥 쉬이 흘려버릴 무의미한 것들이 아니다. 대개 그것들에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고, 욕망은 곧 글감이 된다. 또한 그것들의 무수한 연결은 하나의 번뜩이는 글로 재구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에 있어 침묵과 나 자신에 대한 경청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겠다. 무언의 소리들은 침묵이라는 시간을 통해 정제되어 하나의 글이 된다.
그래서 짧은 글을 통해 하고픈 말이 무언가 싶어 다시 조용히 마음에 귀 기울여 본다.
내가 하고픈 말은 '경청은 훈련에 의하여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수한 선택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은 때론 지난하기만 하다. 주어진 상황이 버거워질수록 내 목소리인 듯 아닌 듯하는 잡음이 함께 들린다. 아마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내가 서로 갑론을박 중이려니 싶다.
그럴 때일수록 일단 침묵의 상태에 더 머물러 진짜 욕망의 소리를 구분해 내야 한다. 처음엔 쉽사리 들리지 않는다. 살면서 체화된 '누군가의 기대'라는 것이 생각보다 진짜 나의 소리를 감추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부여잡는다면 결국 듣게 될 것이다. 경청의 기술도 해가 갈수록 더 예리해지기 마련이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기까지 '나를 듣는 시간'은 참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여전히 거둬 내어야 할 소리가 많아 잡음에 혼란스러울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그저 반복할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경청은 결국 훈련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쉽게 서로를 향하여 '경청의 미덕'을 이야기 하지만 실상 그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나를 참아내야 하고, 주변을 구분해야 하며, 오롯이 상대방을 전심으로 느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함부로 경청을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경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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