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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ug 24. 2022

다 안다는 착각

경청할 때입니다

-저 봐 저 봐, 내 말 또 끊어먹네.

=내가 언제? 당신이 말 같잖은 소리 하니까 그렇지.

-아니, 내 말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왜 당신 마음대로 판단해?

=내가 당신하고 몇 년을 살았는데 척하면 척이지. 난 다 알아.


금방이라도 손에 든 휴대폰을 던져 박살내기 직전의 드라마 장면일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대본을 써 가는 인간들의 발가벗겨진 이야기이다.

좋을 때는 모르지만, 문제를 만났을 때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부끄러운 민낯의 나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금쪽같은 내 새끼>에 이어 <금쪽 상담소>까지 수많은 심리 상담 프로그램으로 모난 인격과 편견을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잡아주고 있는 오은영 박사님. 출연자들이 말하는 동안 카메라가 오 박사님을 잡으면, 그분의 얼굴 양 편에 띄우는 자막이 있다. 바로 "경. 청."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사실상 <우리 '엄마 아빠'가 달라졌어요>의 순한 맛이고,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새끼'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부모'라는 거울을 보고 그대로 자란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육아상담의 성인 버전인 <금쪽 상담소>는 오해와 무시, 분노와 회피 속에 무심히 흘려보낸 시간이 얼마나 금쪽같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점집에 온 거 마냥 상대방의 문제점을 기막히게 알아맞추는 오 박사의 진단에 다들 동공이 커지고 소름 돋아 어쩔 줄 몰라한다. 처음에는 웃으며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회한과 참회의 눈물을 쏟으며 눈가를 찍느라 혼나고 (보는 나도 줄줄 흘러 나는 코를 푸느라 정신이 없다), 감사 속에 새로운 다짐과 실천으로 마무리한다.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출연자들마다 아이나 상대방의 독백을 들을 때 반응하는 점이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가, 내 아내가, 내 남편이] 정말 그런 줄 몰랐어요.


왜 몰랐을까? 한 집에 같이 사는데. 일과 시간엔 떨어져 있어도 저녁 시간이면 한 자리에 모이는데. 

몇 개월이 아니라 수년에서 때로는 삼사십 년 넘게 같이 봐오면서 살아왔는데, 어떻게 모른다는 말이 나올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그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일축하기에는 오은영 박사에겐 적용이 안 된다.

에이, 그 사람은 전문가잖아. 전문가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글쎄, 전문가라고 했지 무당이라고는 안 했다.


몇 시간 정도만 봐온 것일 뿐인데 그분은 어떻게 명쾌한 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인간이 아닌 반려견에서도 대상만 다를 뿐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잘 보고, 잘 듣는다. 주시하고 경청하며 관찰한다. 동일 분야에서 박사이고 달인의 경지라면 '그냥 딱 봐도 압니다'라는 오만함이 자신도 모르게 배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나 눈썹을 올리며, 두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가며, 귀를 세우고,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지 않고, 닳아빠진 상투적인 말로 대하지 않는다. 그건 방송이고, 출연료가 있으니까 그래 라는 식의 천박한 자본주의적 설명으로 다할 수 없다. 매회 진심이다.


진심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잡는다. 경청이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 눈칫밥 속에 인정받으려고 긴긴 세월 애써 참아왔던 그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고, 방송 출연 30년 넘은 베테랑마저 눈물을 쏟게 한다. 그들의 감정은 직접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내 언어, 행동, 태도, 습관을 고루 돌아보게 한다.


경청은 '산전수전 겪어 본 난 다 안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하고 편협에 휩싸여 있는가를 드러낸다.

경청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프레임을 씌워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는가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경청을 통해 서로에게 얽어맨 굴레를 풀어주고 자유를 가져다준다.

나의 경청은 나와 마주한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f unsplash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 경청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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