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저녁이 없는 삶이지만 괜찮습니다.

- 그러나 나에게는 대낮이 있다!!!

by 알레

육아를 시작한 지 600일이 지났다. 벌써 600일이 지났다니. 항상 뒤돌아보면 왜 그리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것 같은지. 나의 시간도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아이의 성장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최근 들어 아내랑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우와, 우리 아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누워만 있던 아가가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 엎드려 제법 목을 가누기 시작할 때, 옹알옹알거리다 맞는 듯 아닌 듯 단어를 내뱉었을 때, 일어서서 균형을 잡기 시작하더니 한 발짝 두 발짝 걷기 시작할 때. 매 순간이 소중하지만 특별히 어떤 변곡점을 넘어서는 순간을 마주할 때면 그 감동은 이로 말할 수 없는 것이 부모 맘이다. 요즘에는 그 감격이 아이가 내뱉는 단어들에서 자주 느껴진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사실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고 지치는 일이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감동의 순간들 덕분이지 않을까. 물론, 내 아이의 존재 자체가 가장 큰 감동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작년에 아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아직은 직장인이었다. 그때 매일 퇴근할 무렵 우스갯소리로 '퇴근하겠습니다. 그리고 육아 출근하러 갑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육아 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이라고 한다면 저녁이 없는 삶이라는 부분일 것 같다.


'저녁'이라고 하면, 생업을 위해 고단한 하루를 풀기 위한 시간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성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하루를 감성으로 위로해주는 시간. 그 시간이 저녁이다.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은 한 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지만 육아맘, 육아 대디에게는 저녁이 없다. 내 몸이 피곤한 것을 주장하기에는 챙겨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조금이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면 최고의 전략은 아이를 일찍 재우는 방법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휘몰아치듯 아이의 정신을 쏙 빼놓는 시간이 필요하다. 600일이 넘어선 아들의 에너지는 이미 마흔이 넘은 아빠의 에너지를 넘어선다. 주위에 아들 키우는 육아 선배들이 왜 그리 애기들 하원 시간에 놀이터에 꼭 들렀다 가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어떻게든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으면 재우기 위해 나름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상적인 것이야, 아이를 재우면서 같이 잠들고 새벽에 미라클 모닝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삶이라고 늘 마음속에 다짐해보지만, 그렇게 잠드는 것이 여전히 억울하다는 마음에 결국 1시간이고 1시간 반이고 지나면 방에서 나온다. 멍한 상태로 거의 밤 11시에서 12시가 다 된 시간에 뭐라도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본다.








그나마 지금은 이미 퇴사를 한 상태라 나에겐 저녁 대신 대낮이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나의 삶을 산다. 독서를 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글을 쓸 때도 있고, 운동을 할 때도 있다. 모든 걸 다 하려고 하면 턱없이 모자란 시간 덕분에, 요일 별로 집중할 것들을 나누게 되었다. 이것도 몇 달 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정리되었다.


비록 저녁은 없지만 낮 시간 동안 나의 삶을 살 수 있는 덕분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풍성해짐을 느끼게 된다. 육아는 분명 고된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있기에 반대로 나에게 주어진 몇 시간의 밀도가 높아진다. 그리고 동시에 많은 것들을 내려놓게 된다.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관여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가능한 상황이라면 아이를 낳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리고 동시에 또한 가능하다면 육아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하다면이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니까.


아이의 존재는 많은 것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가 더 많다고 느끼고 있다. 아이는 부모에게 어떻게든 삶을 부여잡게 만든다. 그것이 자기 계발이든, 부업이든, 이직 또는 창업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겠지만 적어도 이제껏 보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배수의 진을 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담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을까 싶다.


저녁이 있든 대낮이 있든 삶에서 더 중요한 건 나를 위한 빈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은 스마트폰조차 잠시 넣어두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시간에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만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더 풍성 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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