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아, 아빠가 미안.
하루가 저물고 이미 새벽 시간에 접어든 지금, 쓰던 글도 잠시 넣어두고 새 창을 띄우게 된 이유는 지금 내 마음에 일어나는 요동을 잠재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삶이 준 선물이자 마치 시지프스의 굴레 같은 것이 있다면 무언가가 끊임없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그저 가볍게 넘어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아무리 넘기려야 넘길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그럴 땐 기어코 써야만 한다. 마치 지금 내가 이러고 있듯이.
야!!!(버럭). 기어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유난히 피로가 누적되었던 하루. 늦은 아침 아이의 친구네와 함께 근처 농장에 동물을 보러 다녀왔다. 낮잠시간과 겹쳐 아이는 유난히 제멋대로다. 좋아하는 토끼에게 먹이를 주며 즐겁게 시작했지만, 이내 고집불통으로 변한다. 나들이면 언제나 사진 한 장 건져보겠다고 사진기를 어깨에 맨체 행여나 아이가 또는 동물이 다칠까 졸졸 쫓아다니며 어르고 달래기를 반복.
제 고집부리는 아이를 들쳐 매고 다른 데로 건너가 시선을 돌려보기도 하지만 이미 내 안에는 화가 끓어오르고 있었나 보다.
육아의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감이 존재한다. 뭐 한 장이라도 예쁜 사진을 건지고 싶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며 아이의 순간을 담아보지만 도저히 틈을 주지 않는다. 기분 좋아 바삐 움직이는 거면 차라리 낫다. 몸을 뻗대며 생고집 부리는 상황이라면 서로 감정이 상하는 건 굳이 상대가 아이이거나 어른이거나를 가리지 않는다.
일단 농장에서의 일정은 그렇게 넘어갔다.
근처 쇼핑몰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뒤 결국 사건은 벌어지고 말았다. 분명 아무 일 없었는데, 잠시라도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아내와 함께 아이를 설득하여 침대에 눕히는 데는 성공했는데. 아이가 물을 찾기에 자리를 비운 잠시 아이는 제 자리를 벗어나 아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영상을 보여달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바로 직전까지 함께 누워 오늘 토끼와 함께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요것만 보고 나서 코 자 하는 거야'라고 했건만. 여담이지만 그래도 내 아이는 아빠가 이렇게 얘기하면 나름 알아듣는 편이다. 이 말을 한 뒤 영상이 끝나고 스마트폰을 끄면 아이도 수긍하고 잠에 드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영 잠들기 싫었나 보다.
결국 하루의 짜증과 순간의 화가 뒤섞여 '버럭!' 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에게는 처음 제대로 아빠한테 혼이 난 상황으로 기억되려나. 평소에 조금 큰 소리를 낼 때는 저도 큰 소리로 울면서 맞대응을 하건만, 오늘은 조금 놀랐는지 엄마를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었다. 방문을 닫고 나간 아빠를 목놓아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아, 나 뭐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바로 밀려온다.
오늘 찍은 사진을 보정하며 아이의 순간을 보고 있으니 점점 마음이 괴로워진다. 그 순간을 못 넘긴 나 자신이 참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냥 영상 하나 더 보여주고 재울걸', '그냥 자기 싫다는 거 억지로 재우지 말걸', '애초에 물통을 챙겨 들어갔었으면...', '어제 일찍 잤으면 괜히 내가 피곤하지 않았을 테고, 그럼 충분히 아이의 투정을 받아줄 수 있었을 텐데.' 참 많은 생각이 부유물처럼 마음의 호수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괴로움을 넘기지 못한 나는 고해성사라도 하듯 이렇게 글로 못난 아빠의 마음을 적어 내려갈 뿐이다.
물론 얼마 지나니 않아 아이는 다시 아빠랑 공놀이도 하고, 목욕도 하였다. 저녁에 일정이 있어 방에 들어가는 아빠를 향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발길을 잡아버리기도 했던 아이를 떠올리니 또다시 후회가 밀려온다.
'그거, 참, 그 순간을 못 넘겨서야...'
누군가 그랬던 것 같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라고. 정말 맞는 말이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결국 나를 기르는 일이다. 아이는 나의 연약함을 가감 없이 들춰낸다. 아이의 눈은 나의 쓴 뿌리를 바라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어준다. 만약 화가 치밀어 오른다면, 윽박 지르기 전에 지금 이 상황은 훈육할 상황인가 아니면 내 안에 차오르는 불만족스러운 감정의 표출인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
자녀를 훈육함에 있어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기란 부모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 템포만 끊어보면 구분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있다고 보인다. 그게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니까.
낮. 버. 밤. 반. 낮에 버럭하고 밤에 반성한다.
오늘 내가 딱 그 짝이 돼버렸다. 에휴.
미안하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