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는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금요일 오후.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서 집을 나섰다. 점심시간 즈음이라 발걸음을 재촉하여 근처 스타벅스를 향했다. 다행히 아직은 사람이 붐비지 않는다. 테이블 자리가 아닌 창가 쪽 바(bar) 테이블 자리를 선호한다. 그중에서도 한쪽 구석. 구석진 자리가 좋은 건 글을 쓰다 잠시 벽에 기대어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창가 쪽 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볼 수 있어서다. 그리고 동시에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이 있다는 것. 유난히 맑은 날엔 건너편 건물의 통유리창에 비친 하늘조차 맑다. 마치 하늘이 땅으로 이어져 내려오는듯한 장면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요즘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루에 꼬박 한 편씩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매일 쓴다는 것이, 그것도 브런치 글 특성상 150자 내외의 짧은 글이 아닌 1500자 내외의 긴 글을 적어 내려 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컨디션을 느껴볼 때, '아, 오늘은 영 쉽지 않겠다'싶은 날 조차도 툭-하고 튀어나온 단어 하나로 시작하여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그동안 내 안에 글감이 없어 글을 쓰지 못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던 걸까.
지금도 책을 읽던 중 도저히 쓰지 않고는 넘어가지 못할 생각들로 가득 차 다시 노트북을 켜고 말았다. 그저 신기한 경험이다. 글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다고?' 하는 반문을 던지고 싶겠지만, '네, 가능합니다'로 답할 준비가 되어있다. 참고로 오늘 하루만 벌써 세 번째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
글쓰기의 축복이 이것이다. 글이 글을 불러온다는 것. 나의 글에서, 책 속의 저자의 문장에서, 또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여 읽은 다른 이의 글에서, 각각의 글은 다르지만 그 안에 내 글의 시작이 있음을 경험한다. 그래서 또 읽게 되고, 더 읽게 되며 쓰게 된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직 감각이 무뎌서일 것이다. 글쓰기의 두 번째 축복은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감지하는 민감성을 키워준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글을 생산해내기 위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소재를 찾기 위한 안테나를 올리게 된다. 사람을 관찰하고, 표정을 읽어보며 상상을 더해 나만의 해석을 붙여본다.
옆자리에서 속사포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카페 안의 소란스러움에도 잠시 마음을 머물러 본다. 글이라는 게 결국 내가 속한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니 시작은 그 세상을 바라봄과 마음의 머무름에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언제나 글이 잘 쓰일 수는 없다. 그 정도 수준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은 그저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나를 즐길 뿐이다. 관찰하고 느끼는 나의 변화에 주목할 뿐이다. 나의 저서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에서 발견한 '시선'이라는 키워드는 꾸준한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다.
관찰하기 시작하니 세상은 참 재미난 곳인 것 같다. 한 개인을 작은 우주라고 볼 때 지구상엔 수십억 우주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나름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은 그저 신기하고 오묘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산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바라보았는가.
당신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었나.
거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