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소소한 행복이 있답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아이와 한 바탕 씨름을 한다. 물론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씨름은 아이와 엄마의 몫.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한 준비로 부산스러운 틈을 타 아빠는 나갈 채비를 마친다. 그 사이 아이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고, 이제는 잘 꼬셔서 순순히 나가는 것만 남았다. 그동안 참 여러 방법으로 아이를 유인했다.
핑크퐁과 장난감들 덕분에 중장비차를 좋아하는 아들은 밖에서 이삿짐 차 소리라도 나면 "어, 뭐야?"라고 하며 문쪽으로 향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얼른 "우리 꿍꿍따 보러 갈까?"라는 말로 아이의 욕구를 공격해주면 대부분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아, 참고로 우리 아이에게 중장비차는 '꿍꿍따'로 통한다. 핑크퐁 중장비차 음악의 리듬이 마치 퀸(Queen)의 We Are the Champion의 도입부처럼 진행되는데, 아이는 그때부터 모든 중장비차는 꿍꿍따로 부른다.
아무튼, 그렇게 오늘도 조금은 느긋하게 집을 나선다.
아이를 등원시키는 건 주로 아빠의 몫이었다. 엄마가 준비시키면 아빠가 차로 후다닥 데려다주고 오는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아내와 아이하고 함께 걷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마침 날이 좀 풀린 듯하여 유모차를 펴고 아이를 태운 뒤 아내와 셋이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따라 바람이 좀 불었는데 덕분에 노란 은행나무잎이 흩날렸다.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비를 바라보는 아이는 그저 즐겁기만 하다. 덩달아 신이 난 엄마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거뜬히 떨어지는 나뭇잎 한 장을 잡아챈다. 그리고 아이에게 건네주니 아이는 그저 좋기만 하다. 덕분에 시간은 계속 지체된다. 근데 뭐 아무렴 어떤가.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우리 가족 셋이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한 것을.
아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뭐라도 먹고 들어갈까 해서 식당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순대국밥, 추어탕, 항아리수제비, 칼국수 등 여러 식당이 근처에 있었지만 오늘의 선택은 생선조림이었다. 유모차를 밖에 세워두고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훑어보다 고등어조림이 눈에 띈다. 매콤한 양념에 잘 조려진 고등어가 떠오르니 군침이 돈다. 아내는 오징어 볶음을 선택했다.
잘 차려진 한 상. 밥 한 술 뜨기 전 먼저 의식이라도 치르듯 사진을 남겨본다. 요 근래 음식 사진은 잘 안 찍었는데, 오랜만에 한 컷 남겨보았다. 허기진 배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인지라 얼른 사진 찍기를 마치고 고등어조림을 음미해본다. 등 푸른 생선이 자칫 비릴 수 있어 선호하지 않는 아내도 한 접 먹어보더니 맛이 괜찮다며 함께 나누었다. 아내랑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하는 그저 즐거운 한 상이다.
어느새 싹싹 비워진 빈 그릇만 남는다. 배가 든든해지니 어쩐지 마음도 따땃해지는 기분이었다.
여유를 가지고 평소 집으로 돌아가는 루트가 아닌 다른 곳으로 걸음을 향해본다. 그래 봐야 오십 보 백보이지만 늘 다니던 방향이 아닌 곳으로 가니 괜스레 더 즐겁다. 가는 길에도 또 후드득 낙엽비가 소나기처럼 내려준다.
아이의 하원 시간. 마침 아버지 어머니께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 소다! 소고기다!! 부랴부랴 아이를 챙기고 소아과에 들른 후 약속된 장소로 간다. 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기분이 좋고, 아빠는 소고기를 만나 덩달아 기분이 좋다. '치-치-' 앞 뒤로 한 번씩이면 족하다. 아이는 포크를 들고 잘도 찍어 먹는다. 물에 빠진 고기도 좋다고 잘 먹는다. 요즘 자꾸 하게 되는 말이지만, 정말 언제 이렇게 컸는지 싶다.
일상은 대체로 지루하게 흘러간다. 특별할 것 없고, 늘 살아가는 패턴대로 살아간다. 바쁘면 바쁜 대로 여유로울 땐 또 한 없이 여유롭게, 그러나 어쨌든 대부분 반복적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일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하루를 보냈지만 요즘 일상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지난달 말 안타까운 생의 끝을 맞이한 젊은 넋을 생각하면 일상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은 치기 어린 푸념같이 여겨진다. 반면 매일 쑥쑥 자라는 아들을 보고 있자면 일상의 쏜살같음을 어떻게든 잡아 세우고 싶어 진다. 조금은 천천히 컸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건 새로움을 바라볼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거니는 거리의 단풍도 달라지고 있고, 아이는 어제는 보지 못한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는데 오로지 내 마음만 어제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느새 1년이다. 아이는 22개월을 살고 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육아 아빠가 된 시간이 어느새 1년이 넘게 흘렀다. 그 사이 아이는 말 수가 많아질 만큼 부쩍 자랐다. 그 사이 써 내려간 글이 제법 쌓일 만큼 아빠도 자랐다. 돌아보니 무료하다 여겼던 그 일상이 우리를 이만큼 자라게 만들었다.
알고 보면 소소한 행복은 일상에 넘쳐났던 것을, 이제야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