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친구보다 지인이 더 많아진 나이가 되었다.
언제였더라. TV 예능 프로그램 중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며 '친구야 반갑다'라고 말하면 진짜 친구일 경우 '반갑다 친구야!'라며 반가운 재회가 이뤄지고, 그렇지 않을 경우 '아무개 씨,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미션이 실패로 끝나는 그 예능이 기억난다. 솔직히 이 멘트조차 가물가물하다.
다른 건 몰라도, '반갑다 친구야'라는 말 만은 기억하는 건, 그만큼 '친구'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정서가 그리워지는 요즘이어서 인 듯하다.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친구사이일까? 아니면 지인일까?' 하는. '친구와 지인의 차이는 뭘까?' 하는 생각. 친한 사이, 아는 사이로 구분하기엔 조금은 모호하다. 지인이라도 더러는 친밀감이 있는 경우도 있고, 친구 사이라도 오래도록 연락 두절인 사이도 있으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연락처에 저장되는 사람들 중에는 친구보단 지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사회에서 만난 사이라 그러겠지만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친구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친구와 지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기준은 연락을 할 때 갖게 되는 마음의 부담 정도이다. 지금은 주로 집에 있으니 그럴 일이 잘 없지만, 과거에는 약 1시간이 넘게 걸리는 퇴근길, 차 안에서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전화를 거는 일이 많았다. 아내랑 통화하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로는 아내도 길게 통화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걸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한참 연락처를 들여다봐도 마땅히 누구에게 걸어야 할지 몰라 연락처만 한 참 뒤적였던 기억이 난다. 결국 당시 친한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나에게 친구가 이렇게 없었나?' 순간 인간관계에 대한 회한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쩜 내가 지나치게 그들의 마음을 지레 신경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그냥 걸어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다. 지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스쳐버려서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를 관계들. 그런 중에도 오래도록 남는 이들이 있었다. 각자의 삶이 바빠진 탓에 이전처럼 삶을 나누진 못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래, 적어도 이들만큼은 나에겐 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의 관계는 서로 부대끼며 지낸 시간이 누적되어 더 돈독하게 형성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해관계보다 그냥 서로가 재미있으면 되었다. 그만큼 순수했던 것이겠지. 그러나 사회에 나와 맺게 되는 관계는 서로 부대끼기보다 내적 친밀감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관심사가 같다던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던가, 아님 성향 자체가 잘 맞아서 일면식도 없는 온라인상에서도 충분히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2022년 한 해를 살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난 돈이 많은 부자가 되기보다 사람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여전히도 친구가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또 꼭 친구사이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지인이더라도 서로 진심이 통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감사한 건, 요즘 많은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 나를 참 많이 생각해주는 그 친구 덕분에 마음 가득 풍요로움을 경험한다. 결이 잘 맞다 보니 때론 고민 상담자가 되어 주기도 하고 또 때론 슴슴한 하루를 나누기도 한다. 이런 거. 슴슴한 하루를 나눌 수 있다는 거. 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흔히 사회에서 만난 관계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그만큼 서로가 피상적이란 소리겠다. 그런데 겪어보니 적어도 글로 만난 사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마 글 속에 담긴 각자의 내면을 읽어 내려가며 서로에게 조금은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유난히 글 쓰는 마음이 더욱 소중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