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사랑하고 위로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인간에게 감정은 창작의 본능을 일깨워 주는 보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나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내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의 장점 중 하나가 친화력이라고 이야기 해주곤 한다. 나의 친화력은 어쩌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에서 시작되는 듯하다. 그만큼 감정선에 예민함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소리다.
언제나 스스로를 무딘 사람처럼 생각했다. 무신경한 태도를 일관할 때도 많았다. 어떤 날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냉정한 인간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사회성'이라는 옷을 벗어 버린 본연의 나는 꾀나 예민한 사람이었음을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덕분에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12월 초, 알레쓰바 [알레's Bar] 3회를 녹음했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어떤 음악들과 함께 나눠 볼까, 고민하며 음악들을 골라 보았다. '미리 돌아보는 2022년'이라는 주제로 준비한 알레쓰바 3회에서 나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한 해를 정리해 보았다.
'시작(막연함) - 외로움(불안) - 위로(견뎌냄) - 도약(나를 넘어섬) - 기대(새로운 여행에 대한 설렘).'
아마 1년간 기록한 나의 글을 펼쳐놓고 분류해보면 이 다섯 가지로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중 외로움(불안)의 시간이 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것 같지만.
사랑의 감정과 외로움, 불안의 공통점은 나를 단단하게 둘러쌓고 있던 껍데기를 무력화시키고 그 순간 가장 연약한 존재로 만든다는 점이다. 갑각류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렇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던 기존의 단단한 껍데기를 벗어던져야 하는데 그 순간이 가장 연약해지는 때라고.
올 한 해 동안 참 많은 감정의 부침을 경험했다. 칠흑 같은 어둠의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했고, 따뜻한 위로와 아낌없이 나눠주는 사랑으로 평온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차피 삶이 한결같을 수는 없는 것이니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그 덕분에 글이라도 쓰게 되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디오 녹음을 하러 가면 PD님은 늘 나의 감성이 좋다고 말씀해주신다. '내 감성', '그게 뭘까?' 늘 혼자 생각하게 되지만, 좋다고 해주시니 좋은가보다 고맙게 담아둔다. 이런 칭찬을 들을 때면 늘 드는 생각이 있는데, 정작 나는 내 감성을 모자란 무언가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볼 때면 나의 글에는 잘 담기지 않는 그분들의 위트를 항상 부러워했다. 다른 작가님들의 팟캐스트를 들을 때도 '저분은 어떻게 저렇게 목소리가 좋지', '아, 어떻게 저런 멘트를 할 수 있지'라는 생각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나의 감성을 좋다고 얘기해주는 분이 있다니.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주지 못했나 싶은 생각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밀려온다.
연말이면 자연스레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는 데에는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만 한 게 없다. 정량적인 기록으로 나의 시간을 돌아보면 그만큼 가시적인 결과가 눈에 보이기에 잘한 것과 부족한 것을 찾아내기가 쉽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것이 감정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매 순간 모든 사건들에는 감정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감정 어휘라는 책도 있을 만큼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더 잘 정리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표현하고 싶지만 정작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그저 흘려보내야만 했던 아쉬움이 남는 한 해였기에. 시를 읽어야 하나. 농도 짙은 에세이를 읽어봐야 하나 생각만 많다.
아름다운 말로 가사를 써 내려가는 작사가처럼, 짧은 문장으로도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내는 시인처럼, 감성 만렙 인간이 되고 싶다. 내 몸에 뿌린 향수의 향기를 내가 맡을 수 있을 만큼 진한 향기를 자아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이라는 시간은 여리디 여려지는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어쩌면 더 단단하게 무르익어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약해지는 순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을 부여잡고 씨름하는 시간이 있기에 감성 센서는 나날이 예리해지는 것이 아닐까.
언젠간 나를 넘어 세상을 위로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