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서울 촌놈이 산다.
지방에서만 줄곧 살던 사람에게 서울은 정말 낯선 곳일 거라 생각한다. 회색도시. 복잡하고, 사람들은 떼를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제각각이다. 한강의 자전거 전용 도로로 25km를 달려보면 빨리 달릴 경우 편도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 출퇴근 시간에 같은 거리를 달리면 차로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만약 비나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자전거로 달리는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서울은 살아도 살아도 낯선 곳이다. 지방러에게만 서울이 낯선 곳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서울에도 엄연히 서울 촌놈이 살고 있으니.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이니 굳이 내가 서울 어디에서 거주하는지 지역은 밝히지 않겠다. 괜히 모두를 일반화하고 싶지 않으니. 나는 홍대, 합정, 연남동, 강남, 청담, 성수 등등등,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를 싫어한다. 왜? 그냥 사람 구경하러 가는 기분이라 싫다. 솔직히 고백하는데 위에 언급한 지역이 지금도 핫 한 곳인지 조차도 감이 없다.
서울에서의 삶은 태생부터 사람 구경이 시작된다. 그런데 뭣하러 굳이 그 복잡한 곳에 나가야 하는지. 초, 중, 고를 다니면서 늘 생각했다. 서울에는 놀만한 곳이 없다고. 그러니까 PC방, 카페, 노래방, 술집을 빼면, 어디서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개천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청소년 시절, 한 없이 밤거리를 배회해본 경험이 있다. 불량학생은 아니었으니 오해는 마시길. 그냥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 근처 열람실에 가서 새벽 2시 정도까지 앉아있다가 집으로 향하는 시간에 굳이 길을 돌아 돌아가곤 했다. 텅 빈 거리. 그리고 텅 빈 도로. 오직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서울의 다른 모습이었다. 그 시간이 나에겐 가장 이 도시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이제 합법적으로 술집도 가고 다양한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때가 되니 오히려 노는 패턴이 더 지루해졌다. 남들이야 뭐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고교시절에는 그래도 그 나름의 순수함과 순정이 있었다. 기독교인인 나는 청소년 시절 그 나름의 순수한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데 청년이 되어 청년답게 노는 문화를 접해보니, 맨날 PC방, 술, 노래방, 카페가 전부다. 이 패턴에서는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가보다. 내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도 결국 이 굴레 안에 살아가는 듯 보이니.
굳이 약속이 있지 않으면 동네 밖을 잘 가지 않았다. 내 기억에 대학생 시절 당시 CGV를 가기 위해 강변까지 간 기억이 난다. 아마 그게 가장 멀리 나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 창 밖의 햇살이 강물 위에 스쳐 반짝 거리는 순간을 바라보는 것은 좋았지만. 그 외에는 뭐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일 뿐이다. 서울엔 사실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가 넘친다. 미술관, 박물관, 문화 유적지뿐만 아니라 분위기 좋은 공간들이 지금도 계속 생겨난다. 계속 생겨난다. 계속. 계속. 그리고 그곳에 한 번 가보려친다면 줄을 서야 한다. 미친. 아, 속마음이 나도 모르게 그만.
그냥 난 이제 서울에 촌놈으로 계속 살아가는 게 속 편하다. 도시 사람, 뭐 그딴 건 애초부터 없었다. 이제는 퇴사도 한지라 더욱 시내 나갈 일이 드물다. 오히려 지옥철을 피할 수 있는 시간대에만 움직이는 편이다. 한때 지방에서 1년 거주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이 나를 부를 때마다 '서울 사람, 서울 사람' 하던 기억이 난다.
죄송하지만, 전 생각하시는 그런 서울 사람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 때나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