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3개월 차입니다.

이제 말 좀 할 줄 압니다.

by 알레

'아빠', '엄마', '이모', '하지' 정도만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음절 단어를 내뱉었을 때도 그저 신기하고 놀라운 순간이었고 '천재인가?' 하는 육아맘, 육아 대디의 그 흔한 착각에 빠져있던 때가 얼마 전 같은데, 인생 23개월 차 아가는 이제 말로 아빠를 약 올리는 수준이 되었다.


2음절에서 3음절이 되고, 2음절 + 2음절이 되더니, 이제는 제법 문장을 구사한다.


이거 뭐야? (하루 중 아마 제일 많이 하는 말 TOP3 안에 드는 것 같다)
아빠, 건전지, 아빠, 고쳐- (장난감 건전지를 갈아줬더니 그 뒤로 뭐만 고장 나면 하는 말)
아빠, 앉아.
쵸코 송이. (쵸코는 못 참지)
꼬까콘 (일전에 꼬깔콘을 손가락에 끼워졌더니 그다음부터 손가락을 까딱 거리며 하는 말)
아빠, 커피. (아빠 일하러 가라고 할 때)
아빠, 커피 하는 거. (집에서 내리는 커피 도구를 보며 하는 말)
친구, 앙- (어린이집 친구가 손을 깨문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친구 이름을 대며 앙-이라고 한다)
하나님-, 아멘- (자기 전에 함께 기도했더니 언젠가부터 하나님과 아멘이라는 단어를 하기 시작했다)
장로님, 권사님, (교회에서 하도 들어서 하는 말)
당근. (엄마 스마트폰에 당근 알림이 울리면 아이가 따라서 '당근'이라고 한다)
꿍꿍따!!! (아이는 포클레인을 보면 꿍꿍따라고 말한다. 핑크퐁 중장비차 음악의 리듬이 쿵쿵따여서,,,)
아빠, 꼬우~!, 아빠, 붕붕~ (차에 타면 늘 하는 말)
배꼽손, 아여가세여. ( 배꼽에 손, 안녕히 가세요 인데, 정확히 뭐라고 발음을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몰라 그냥 적는다.)


이 뿐만 아니라 아이는 종종 놀라게 하는 표현들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고 또다시 의혹을 제기한다. '처.. 천잰.. 가?'


아이는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같은 어린이집 엄마들 중에 둘째를 키우고 있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남자애치고는 말이 빠른 편이라고는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아기는 치아도 빨리 났다. 벌써 제일 안쪽 어금니도 아래는 다 났고, 위에도 나고 있는 상태니.


뭐든 빨라 보이는 아가를 보면 '조금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재밌기도 하다. 무슨 말을 해도 나 혼자 말하는 기분이 들었던 1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알아듣고 이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는 아들 덕분에 가끔은 다 큰애로 착각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오히려 의사표현이 점점 정확해지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니 곤욕스러울 때가 잦아진다.


밥을 먹일 때도, 자기 식판에 반찬 칸 하나기 비면 밥을 먹는 내내 엄마를 바라보며 '없다'라고 말한다. 엄마 맘 불편하게시리! 아침에 일어나서 기저귀를 가는 것부터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야 하니, 아침부터 진이 빠질 때도 많다. 안될 땐 결국 먹을 걸로 꼬신다.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황은 넘겨야 하니. 신발을 신고 걷다 보면 죽어도 유모차에 안 타려고 한다. 당연히 집에도 안 들어가려고 한다.


한 번은 우리가 너무 아이를 걸리지 않나 싶어서 어린이집 하원길 중간 지점부터 함께 걷기 시작했다. 가을 녘이어서 걸어오는 길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붉은 단풍잎이 많이 있었다. 아이는 좋아라 하나 둘 집어 들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가 아파트로 들어가는 지점에 서니 갑자기 딴청을 피우며 몸을 돌린다. 다시 오던 길을 향해 잰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맞다. 집에 가기 싫었던 것이다.


집에 들어가야 하니 어떻게든 붙잡아 유모차에 앉혀보지만 몸을 빳빳하게 펴며 어떻게든 안 타려고 떼를 쓴다. 결국 쵸코 송이로 극적인 타협을 본 뒤 집에 들어간 적도 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는 언제나 엄마를 찾는 아가. 이제 알아서 아빠에게는 나가라고 한다. '아빠 안녕~', 또는 '아빠 커피-'를 거듭 외친다. 그렇다. 엄마랑 잘 거니까 나가라는 거다. 어차피 할 일도 있고 땡큐다 싶으면서도 내심 섭섭하다. 그래도 한 동안은 아빠랑 잘 잤는데.







아이의 언어가 발달하니 점점 본인만의 세계도 확장되어 가는 듯하다. 그렇게 아이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빠가 말공부를 해야 할 차례가 왔다. 아이에게 좋은 말, 예쁜 말을 가득 심겨주고 싶다. 언어는 한 사람의 세계라고 하니 이왕이면 예쁘고 긍정적인 세계가 아이의 내면에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이의 성장을 보며 나의 일상의 말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이는 부모의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존재이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습관적인 언어를 아이는 그대로 배우고 그것이 어떤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한다. 가끔 깜짝 놀랄 때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이제 다음 달이면 아들은 두 돌이 되고 아빠는 40+a 돌을 맞이한다. 어쩌다 보니 아들과 나는 생일이 하루 차이다. 두 돌을 앞둔 아이는 힘이 점점 세지고 에너지가 넘치며 많은 말들을 통해 더 많은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마흔몇 돌을 맞이하는 아빠는 그런 아이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지혜를 배운다.


늘 위를 바라보며 배우던 삶이 이제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