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P형 인간의 꾸준히 글쓰기 노하우
막상 제목을 적고 나니 심히 부담스럽다. 내가 뭐라고 저런 말을 썼나 싶어 제목을 고쳐볼까 하다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이참에 나도 내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사실 작년의 목표 중 하나가 글쓰기에 대한 전자책을 써보는 것이었다. 시작은 해봤지만 이내 진척되지 못했던 것은 그다지 꺼낼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니 뭐라도 적어보라 하지만, 정작 나의 글쓰기는 대체로 나의 감정에 연결되어 있기에 누구처럼 글쓰기 노하우를 정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은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둬야 할 것 같아 굳이 MBTI를 거론해 보았다.
나는 어떻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까?
첫 번째는 감정을 읽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의 글은 나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또는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의 감정을 붙잡을 때가 많다. 마치 작은 실마리를 발견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는 것처럼 나의 감정을 파고든다. 감정이 중요한 건 그 안에는 그렇게 느끼게 만든 나만의 사건과 역사의 흔적이 남겨져있기 때문이다.
요즘 여러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있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 날의 나의 기억으로 떠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둠이 밝아지듯 그때의 모습과 그 순간의 감정이 순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공간을 넘어 이어진다.
두 번째는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읽지 않으면 계속 써 내려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여러 작가님들의 글을 매일 읽고 있는 요즘이 나에겐 글감이 마르지 않는 축복의 시간이다. 오롯이 창작해낼 능력은 없는터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해석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또 많은 책들이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저자 각자의 해석에 따라 새로운 저서가 되어 출판되지 않던가.
그런 점에서 재해석은 충분히 적용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단 재해석을 해야지 표절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은 꼭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두 번째와 이어지는 세 번째 방법은 힘을 빼야 한다는 것.
나는 평론가가 아니다. 어떤 글에 대해 기갈난 논평을 하려는 마음으로 재해석하려다간 하루종일 무엇 하나 기록하지 못한 채 하염없는 시간만 흘러갈 것이다. 힘을 뺀다는 말은 참 야속한 말처럼 들린다. 세상의 고수들은 결국 다 하나같이 이 말을 한다. '힘을 빼야 돼요.' 심지어 인생의 연륜이 가득하신 분들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젊은이, 힘 빼고 살아.' 뭐, 내가 고수라는 말도 아니고 연륜이 가득한 사람이란 소린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이 표현을 굳이 가져다 쓰는 이유는, 힘이 너무 들어가면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령 운동을 해도 마찬가지다. 수영을 나름 오래 했었는데, 수영을 할 때 힘 빼기의 교훈을 크게 느꼈다. 순간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발차기부터 스트로크까지 근육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만 장거리를 하기 위해선 물의 흐름을 타야 한다. 물의 흐름을 타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힘 빼기가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자를 너무 의식해서는 글이 쓰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또 독자를 너무 무시해서는 정작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데 힘이 빠질 수도 있다. 그 적정선을 찾아 나를 컨트롤하는 게 필요하다.
네 번째 방법은 반응을 신경 쓰면서 동시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역시 세 번째 마지막 문장과 이어진다. 숫자로 연결되는 반응에 몰두하면 내 글, 내 콘텐츠의 주인은 내가 아닌 독자가 된다. 물론 글의 목적에 따라 정도는 나뉘겠지만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내 글의 주인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지나치게 반응이 없는 생산 행위는 또한 동기부여가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적정선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작가가 있기에 독자가 있는 거고 동시에 독자가 있기에 작가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둘의 궁합이 좋은 게 좋지 아니한가.
마지막 방법은 그냥 쓰는 것!
결국 위의 네 가지 방법보다 가장 현실적으로 나에게 적용되고 있는 방법은 마지막 방법인 그냥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각보다 '그냥' 뭔가를 한다는 게 의외로 쉽지 않다. 특히 글을 쓴다는 것은 더 쉽지 않아 보이는데 자기 검열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보고 비웃으면 어떡하지?' '악플이 달리면 어떡하지?' '세상에 나만 빼고 다 잘 쓰는 것 같은데 이런 유치한 글을 발행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들. 글쓰기를 시작한 작가님들이라면 한 번쯤은 가져봤을 생각이다. 나 역시 그랬고.
그런데 이런 고민을 꺼내 놓을 때마다 앞서 이 시간을 경험하신 선배님들은 이렇게 답을 해주었다.
"사람들은 너에게 그다지 관심 없어." 참으로 냉정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냉철한 답변이었다.
맞다. 내가 진짜 아무 말 대잔치의 글을 써도 사람들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걸 깨닫고 나니 조금은 허탈하기도 했다. 사실 내심 관심에 목말랐기에. 그러나 오히려 편하게 쓸 수 있었고 덕분에 계속 쓰고 있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 고갈되는 글감도, 적절히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반응에서도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지만 매일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이 고민 저 고민할 여력이 없다는 소리다. 그저 오늘은 또 어떤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가장 클 뿐이다. 그 덕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게 된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칠 수 있는 거리도 굳이 한 번 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고 가로수를 볼 때도 있고 떨어진 낙엽에 의미를 부여해보기도 한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을 매일 하는 삶인 것 같다. 익숙한 나의 모든 것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스스로 낯설어지다 보면 익숙함 이면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럼 그게 또 글이 된다. 그렇게 하나 둘 쓰다 보면 그 재미에 빠져 계속 쓰게 된다.
덕분에 오늘도 오늘의 글이 쓰이고 있지 않은가.
정 혼자서 어렵다면, 진짜 마지막 방법으로 함께 쓰기를 추천한다. 지금 나와 함께. 글루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