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도 매일 아침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언제나 꿈꾸던 노마드 라이프. 바로 지금 이 순간, 짧은 순간 완벽한 노마드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그렇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로 지금 말이다.
아내와 아이랑 함께 떠나온 3박 4일의 제주 여행. 아이를 위해 머무르는 숙소는 아이의 장난감이 가득한 키즈 펜션이다. 원룸 타입이며 좌식이다 보니 어디 하나 편히 앉아있을 공간이 없다. 좌식 생활은 만성 허리 통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당에 낮은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어 오늘은 그곳으로 정했다.
여행의 기분 탓일까, 아이는 내내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다.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나의 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덕분에 아이는 평소보다 늦게까지 자고, 역시 그 덕분에 난 아침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혀 계획하지 않은 행운이 주어졌다. 그래서 매일 아침 글쓰기로 하루를 열게 된다.
아이가 깨는 순간 이 짧은 여유도 끝나기에, 조심조심 커피를 한 잔 내리고 노트북과 책을 챙긴 후 밖으로 나왔다. 1월 중순에 접어든 제주인데, 이번주는 유난히 따뜻하다. 바람도 세지 않고 하늘은 맑고 기온은 10도 안팎이라니. 마치 3월 초 봄에 여행온 기분이랄까. 기분 좋은 음악과 커피 향을 맡으며, 잔잔한 바람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는 서울러인 나에게 평온함 그 자체다.
그동안 주로 밤, 새벽 시간에 글을 썼다. 집에서는 아이가 잠든 이후에 나만의 고요한 시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바라는 삶은 미라클 한 이른 아침 시간에 잠에서 깨어 하루를 여는 것이지만 현실의 나의 삶은 미라클 한 이른 아침에 잠드는 것으로 계속되고 있다.
둘 다를 경험해 보니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이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성취감이 가득 들어차는 기분과 함께 하루를 힘 있게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익숙해지기 까지 몽롱한 시간을 견뎌야 하며 그마저도 익숙해지면 그 아침에 글쓰기, 독서, 콘텐츠 작업 등 뭐든 다 하고 싶어지는 욕심도 차오른다는 것이다. 한 가지에 집중해야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데 어느새 다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차니 아이가 깨기 전까지 주어지는 약 3-4시간이 곧 끝나버릴 짧은 시간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이른 아침에 하루를 마감하는 미라클 나잇의 경우 솔직히 시간대비 효율성은 떨어진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그 시간은 잡념이 많아지고 분주하다. 어쨌든 하루를 살아내고 난 이후의 시간이다 보니 뭘 더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놀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다. 그래서 마음이, 에너지가 분산되기도 한다. 반면 밤 12시부터 아이가 일어나는 8시-9시 사이까지 온전히 내 시간이라는 여유가 있다. 끝나지 않는 시간 같은 기분이랄까. 어느 날 집중이 잘 되면 글쓰기, 독서, 콘텐츠 작업 등 많은 것을 후다닥 처리하고도 시간이 남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보통 새벽 4시경에는 잠자리에 들지만.
미라클 모닝과 미라클 나잇 둘 다 의미 있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난 미라클 모닝을 지향한다. 현실과 다르게.
여하간 제주를 여행하고 있는 지금, 나는 매일 아침 쉼 없이 자판을 두드리며 하루를 연다. 그게 10분이든 1시간이든, 그저 주어진 그 여유시간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어느새 글 쓰는 삶은 나의 삶에 중요한 한 축이 되었다. 제주에 살고 있어 연례행사처럼 만나는 학교 선배와 커피 한 잔 하면서도 어느새 '형도 글쓰기를 시작해 봐'라고 말하고 있었으니.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로망 같은 순간이 있었다. 이른 아침에 커피 한 잔과 독서, 또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오늘 그것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 이제 시작한 하루지만 벌써 오늘 하루가 만족감으로 채워지는 기분이다. 다시 한번 그저 감사하다.
노마드로 살면 이런 기분일까?
워케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이 주는 기분은 이런 것일까?
제주에서 이런 삶을 잠깐이라도 누려볼 수 있음에 행복하다. 그리고 지금 아이가 날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이제 노마드에서 벗어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