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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에 대해 몇 자 적어봅니다.

직장생활에서 시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끝맺음입니다.

by 알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것일까. 셀 수 없이 많은 그들 중에 당신들을 만난 거고, 그 당신들 중에 또 바로 당신을 만났다는 사실. 그 특별함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아직도 그 특별한 첫 만남을 기억하는 듯하다.


반대로, 특별했던 그 마음도 시간이 지나 어느 때 '그놈의 정 때문에!'라는 말이 대신하는 관계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그 순간 서로의 존재는 어느새 마음의 짐이 된다. 물론 '그놈의 정 때문에'의 순간이 항상 불편한 상황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로 한 번의 손해를 눈감을 수 있고,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기도 하며, 처음이 낯설어 헤매는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제공해 줄 수도 있으니까.


사람을 사귀고, 사람이 좋아 사람에게 푹 빠지다 보면 어느새 오지랖이 돼버릴 수도 있지만 어떤 누군가에게 푹 빠져 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특별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지 않을까. 비록 끝은 '그놈의 정'이 될지언정.


이런 경험이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도 마찬가지다. 요즘 조용한 퇴사가 트렌드라고 한다.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며 직원과 회사의 서로에 대한 니즈가 이전보다 더 상이해진 데에서 비롯한 현상이다. 사실 조용한 퇴사는 갑작스레 생겨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이미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열정페이라는 말이 어쩌면 그 단초를 제공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둘 사이의 괴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었다. 오히려 과연 둘 사이 보이지 않는 평행선에 접점이 생기는 날이 올까 궁금해진다.


이번엔 생각을 달리 해보자. 누구나 꿈꾸는 직장생활의 이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워라밸로 대변되는 적당한 삶의 모습은 어찌 보면 대한민국 현실에선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언제나 그렇지만 대체 '적당한'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한 편으론 우리가 지나친 꿈을 꾸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마치 저기 북유럽 어디쯤에 있는 나라의 삶을, 이곳,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대한민국 땅에 끌고 오려는 것은 오히려 욕심이지 않나.


이미 마흔 줄에 접어들어 살아가고 있는 나도 어쩌면 조용한 퇴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대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을 무시해서도, 나무랄 생각도 전혀 없다. 당연히 나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 그저 개인의 생각을 몇 자 적어보자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다.


'낭비'라는 표현에 잠시 망설여지지만 그냥 그대로 써보기로 한다. 실제로 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 오히려 그 생각이 퇴사로 이어진 사람이니. 40대라고 해봐야 100세 인생시계 기준으로 여전히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시간을 살아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살아본 입장에서 지난날의 후회, 미련이 남는 부분은 누군가의 생각이나, 주변의 분위기, 또는 시대의 조류에 휩싸여버린 순간들에 대해서다.


2023년은 평균이 없어진 시대라고 한다. 가까이만 봐도 정말 그런 것 같다. 누군가는 조용한 퇴사를 선택할 때 누군가는 악착같이 경험하고 레벨업을 위해 지금도 스스로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어떠한 삶도 좋고 나쁨의 가치평가는 사절이다.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책임질 수 있으면 그만이다.


지금의 난 그때 아쉬움 덕분에 할 수 있는 만큼 치열해지고 싶을 뿐이다. 어떤 모습으로 살든 기억해야 할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모든 것엔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도, 삶도, 사랑도, 관계도, 열정도, 아픔도. 더 중요한 건 누구도 그 끝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또 오늘이 소중해진다. 그리고 지금의 가치가 더 값져진다.


영원한 사랑이 없듯 영원한 직장도 없다. 만약 조용한 퇴사가 득이 된다면 바람직한 것일 테지만, 오히려 그것이 내 인생에 독이라면 그냥 퇴사하는 게 나을지도. 아니면 반대로 올인하던가. 이래나 저래나 결국 인생에 남는 건 사람이다. 기왕 스치는 인연이라도 좋은 향기를 남길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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