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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독립하고 싶은 3가지

한 번쯤은 외칠 수 있겠지? 독립만세-

by 알레

3.1절이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날. 그날에 나는 문득 그냥 독립이라는 단어에 꽂혀 가만히 생각에 잠겨본다. 마침 아이가 낮잠을 자는 그 시간. 커피 한 잔 마시며 나는 무엇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을까. 3가지를 적어보았다.



1.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퇴사 + 육아 = 집과 혼연일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싫어해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막상 퇴사 후 육아를 하며 집에서 주로 생활을 하다 보니 나를 돌볼 시간이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다른 불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그 시간 동안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 동안, 그리고 아내가 출근을 한 시간에 홀로 남아 나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살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집이 나를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 뭐 그렇다고 살림을 엄청 도맡아서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업육아아빠로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삶의 모드는 살림 모드로 일부 세팅되어 있다. 그리고 그 덕에 보통의 하루에도 20%는 '벗어나고 싶음'의 마음이 깔려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볼 때도 있다. '만약 지금 내가 혼자였다면?' 다시 말하지만 상상이다. Just 상상. 가장 해보고 싶은 건, 어느 날 문득 새벽녘에 바깥에 나가 걸어 다녀 본다던가, 차를 끌고 훌쩍 떠나 본다던가, 완전 불규칙적으로 살아보고 또 어느 날은 지독하게 규칙적으로 살아본다던가. 그냥 신경 쓸 것이 없는 삶을 살아보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근데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이내 고개를 젓게 되는 건, 그럼에도 셋이서 복닥거리는 집이 좋기 때문이다. 이제 말을 제법 잘하는 아이의 예쁜 짓과 그런 아이를 내 곁으로 보내준 아내와 산다는 것. 나를 가장 소란스럽게 만드는 현실이 동시에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마다 늘 감사하게 된다. 그리고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은, 언젠가 나이 들면 자연스레 그런 날이 올 테니, 지금은 지금을 감사히 여기는 걸로 아름답게 마무리해본다.



2. 나의 불안으로부터의 독립: 생각이라는 것을 좀 멈춰 보면 어떨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누구나 불안하다. 불안이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는 건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불안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일 뿐이다. 나의 불안은 대부분 아직 뚜렷한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한 나의 현실에서 온다. 즉 다시 말하자면 입버릇 처럼 하는 말, '아, 뭔가 해야 하는데'라는 표현이 곧 나의 불안 심리를 대변한다.


어떤 날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영양가 없는 생각들. 그럴 때마다 가위로 싹둑 잘라내듯 생각의 꼬리를 잘라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인간이다 보니, 그런 날은 어김없이 굳어버린 하루를 보낸다.


요즘은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는데서 오는 불안함이 자꾸 나에게 생산적인 활동을 하라고 다그친다.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주변에 마음이 풍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매일 애쓰는 삶도 중요하지만 이뤄가는 과정 또한 일상의 어느 한 부분이기에, 일상을 온전히 누릴 줄 아는 삶의 태도는 목표 지점을 향해 가는 힘든 시간조차 견뎌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친구가 늘 나에게 하는 말처럼, 이제 불안에 집착하는 생각을 좀 멈추고 하루를 보다 더 풍요롭게 살아갈 생각을 더 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은 해도 되는 거겠지?



3. 완벽주의로부터의 독립: 이제부터 빠르게 실패하기에 도전해 보자.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제발 그 완벽주의 좀!'이다. 난 '내가 무슨 완벽주의야?'라고 답하지만, 어느 순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 하게 되는 것들을 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이 마음은 그래서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물론 완벽주의가 무조건 틀린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태도인건 사실이니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완벽주의는 오히려 나의 전문성을 증명해 주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완벽주의다. 지금의 나처럼.


나는 일단 성향상 매사에 나서는 사람은 아니다. 뒤로 한 발 물러서 관망세를 유지한다. '가만히 있음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쓸데없이 나서지 않으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런 태도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일단 내질러보는 경험치가 쌓인 사람은 훗날 도전에 대한 허들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그들에 비하면 나는 늘 넘어야 할 허들이 많다. 특히 나이가 들 수록 허들은 더 높아지고 많아진다. 결국 모두 다 내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작년부터 나름 이것저것 도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랜 세월 끌어안고 살아온 완벽주의가 쉽게 떨어져 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의도적인 실패를 겪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정확히는 실패의 경험보단 도전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실패일지라도.






3가지의 독립은 어찌 보면 모두 내가 선택한 삶의 이면에 있는 것들인 것 같다. 나의 가족, 나의 불안, 완벽주의,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선택한 삶의 결과이기에 사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된다. 가족이 있기에 삶이 안정되고, 불안이 있기에 동시에 나를 성찰하며 나아가려 노력하게 된다. 완벽주의 덕분에 그래도 맡은 일들에 대해서 주변의 신뢰를 얻는 편이었으니 생각을 달리하면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요즘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건 '자기 관리'이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동일하기에.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니. 일단 오늘은 아이랑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가 가장 큰 숙제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더 기다려 주지 않을 테니, 얼른 숙제를 해결하러 가야겠다. 자기 관리는 내일 생각해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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