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때가 없다지만 그럼에도 40대만큼 좋은 때가 또 있을까
오늘도 터벅터벅 걸어 집을 나선다. 집중하기 위해 집을 떠나 찾아가는 곳이 집 보다 소란스러운 카페라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지만, 카페의 소음이야 귓구멍에 꽂아 놓은 이어폰 속 음악으로 차단해 버리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살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전업주부에게 살림은 시지프스의 저주와 같은 것이기에, 물리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한 그것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아, 참고로 나는 전업주부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전업주부인 육아아빠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찬란한 40대 인간이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40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40대를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 나이대는 삶의 축이 옮겨지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정말로 인생의 계절이 바뀌는 느낌이고, 2막이 시작되는 느낌이기도 하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볼 때 시도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도 있지만, 그보다는 후회를 넘어 교훈을 찾아내게 되고 그 덕에 두 번째 스무 살 답게 자신을 가꾸는 시간에 집중하게 된다.
30대 때보다 더 나에게 집중하는 건, 어쩌면 다가올 50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든 간에 40대는 다시 한번 차오르는 무언가를 강하게 느끼는 시기다. 불안에 그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불안을 마주하고, 달래주며 나아갈 길을 찾아가는 그런 시기. 어쩌면 40대야말로 내가 나로 가장 반짝이는 시간인 듯하다.
그런 시기를 보내는 나는 지금 글쓰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나의 글에는 언제나 내가 남는다. 나의 글에는 내가 쓰인다. 사실 나는 지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다소 산발적일지라도 무수한 점을 찍어가며 그 점들의 집합체가 보여주는 선을 따라 나의 방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이 내가 보내는 40대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나를 가장 응원해 주는 행동이다.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니까.
매일매일 상상으로 나를 그려본다. 이제 10년도 남지 않은 이 시간의 끝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부족한 경제력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그건 그냥 그 정도뿐이다. 돈이라는 것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또 있는 거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에 대해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함이 지난 한 해 동안 오히려 나를 더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물론 그 덕에 나를 쓰는 글은 더 깊어졌지만.
3월 한 달 동안은 '나'라는 가치에 많이 집중해 보기로 했다. 나의 강점 유형을 보면 대체로 대인관계 영역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나의 가진 것을 정리하기보다 나의 에너지를 흘려보내는 역할을 더 많이 해온 것도 사실이다. 진작부터 필요했던 시간을 이번 한 달 동안 가져본다면 보다 정돈된 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최근 본 드라마에 기억에 남은 대사가 있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좋은 방법은 과연 내가 무인도에 가서도 그것을 할 것인지 떠올려보는 것이라고. 이 대사를 들었을 때 딱 떠오른 건 글쓰기였다. 나는 무인도에 가서도 글을 쓰게 될까? 1초도 망설임 없이 '쓴다'라고 답했다. 아니 오히려 '무인도 생존기'라는 콘텐츠를 만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쯤 됐으면 나도 이제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글 쓰는 사람으로 삶의 모드가 완전히 전환된 듯하다.
40대는 20대, 30대와 달리 농도 짙은 인생의 고민이 다방면에서 일어나는 시기이다. 그래서 괴롭지만 동시에 그래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진중해진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신체적인 2차 성장이 일어났다면 마흔이 되면서 정신적 2차 성장이 일어나는 듯하다. 만약 당신이 마흔을 앞두고 있다면 나는 감히 기대해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이 느끼게 될 파도는 더 거셀 것이기에. 그러나 파도가 거세진 만큼 그 파도에 올랐을 때의 기분은 상상 이상일테니.
마흔 살 인생 파도타기를 앞두고 있다면, 당신은 이제 글을 써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바로 당신 자신을 쓰는 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