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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를 여는 리추얼

균형을 찾아가기 위한 도전

by 알레

얼마 전 오랜만에 피트니스 센터에 갔다. 너무 오랜만에 갔더니 그간의 공백기를 A/S 해주겠다고 트레이너님이 이틀 동안 함께 해주셨다. 평소 근육통을 자주 겪는지라 근력 운동보다는 스트레칭 쪽으로 지도해 주셨는데, 폼롤러를 이용하여 뭉친 곳을 풀어주다 보니 내내 곡소리가 나왔다. 몸을 대는 순간부터 아팠으니 그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곡소리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이틀 동안의 특별 서비스가 끝나고 트레이너님이 내린 결론은, 인바디 수치는 나쁘지 않으나 몸의 균형이 너무 많이 깨져있다는 것이다.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던 것은 뭐 나조차 느끼고 살고 있을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나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대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몇 가지 삶의 패턴을 바꿔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실패를 계획하라!> 먼저 이 프로젝트에는 실패가 없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첫째, 성공하면 개이득, 둘째, 실패하면 그것이 성공이라는 점에서다. 이 멋진 프로젝트의 첫 번째 도전 과제는 미라클 모닝으로 정했다. 오랜 시간 '해야지, 해야지'하며 마음만 반복되었던 그 미라클 모닝을 실천한 지 오늘로 이틀째다. 야호! 이틀이나 그 도전을 지켜냈다는 것에 벌써 만족스러움을 크게 느끼고 있다.


전에는 미라클 모닝에 대해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제오늘의 미라클 모닝은 달랐다. 우선,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해준다. 그리고 새벽예배를 참석한 뒤 바로 아침 산책을 나선다. 약 4킬로 정도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아침 글쓰기를 시작한다. 글쓰기까지 마치고 나면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한다. 대체로 오전에 많은 것들을 끝내고 나면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그 시간에는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여기까지는 그저 보통의 미라클 모닝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느껴지는 감정은 이전과 너무 달랐다. 최근 나는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듯했다. 평소 좀처럼 겪지 않는 감정의 기복도 경험하면서 나 자신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무력감이 컸고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우울감도 자주 찾아왔었다. 그러나 이틀뿐인 아침 리추얼이었지만 벌써 이 모든 감정이 뒤바꼈음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이전의 긍정적인 나로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미라클 모닝이 진짜 미라클 한 이유다.


이틀 동안 경험한 것은, 하루를 부지런하게 시작하는 것을 넘어 충만함으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잘 움직이지 않았던 몸을 움직이려니 이곳저곳이 쑤시긴 하다. 그러나 걷다 보니 자신감이 차오른다. 자신감이 차오르니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현실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현실을 긍정할 수 있게 되니 자존감이 다시 높아짐을 느낀다. 자존감이 높아지니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아침에 들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관련 콘텐츠에서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 '인간은 암시의 노리개다'라는 저자의 표현이 강력하게 와닿았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문장만큼은 너무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지금껏 나를 가로막고 있던 것이 나의 암시, 즉 자의식이었음을 아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뭔가 명쾌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이 내게 보내는 신호에 집중하고 있고, 나를 보듬어 주는 시간을 갖는 중이다. 평소 같았으면 미라클 모닝 이틀차에 마치 엄청난 뭔가를 이뤄낸 듯한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고작 이틀인데'라는 생각으로 일축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틀을 해낸 나 자신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주고 있으며 그로 인해 더 해낼 수 있는 긍정의 힘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어 줬다. 해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 몸과 마음이 만끽할 수 있도록 나에게 시간을 주고 있다.


돌이켜보면 삶은 언제나 가랑비에 젖는 옷과 같다. 긍정도 부정도, 성공도 실패도, 대부분의 삶은 급변하는 것보다 서서히 어느 쪽으로든 젖어들어가기 마련이다. 무엇에 내 몸을 적실지는 온전히 내 선택이다. 아직도 남들이 말하는 소위 '카더라'에 몸을 적시며 살아갈 건지, 아니면 나에게 귀 기울여 줄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부모님이든 배우자나 자녀이든 어쨌든 최종 선택자는 '나'다. 억울해도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디 잊지 말자. 우리는 모두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40대에 다시 이 마음을 품고 내일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는 나에게도,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세상 모든 것을 다 씹어버리겠다는 포부로 가득한 스무 살 청년에게도, 사회 초년생이 되어 내가 왜 이러지 싶을 만큼 어리바리 정신 못 차리는 누군가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것이 오늘 하루, 아침이 내 마음에 채워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나는 별 것 아닌 이 마음을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누고 싶다. 부디 당신에게도 하루가 긍정의 마음으로 충만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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