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거리도 '나'라는 집짓기!
요즘 다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최근 지인에게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 "작가님의 콘텐츠를 보면 '나의 의지'는 있는데 정작 '나'는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그런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콘텐츠를 관통하는 하나의 제목을 지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프로 반성러입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나의 콘텐츠에는 반성과 의지 다짐만 반복되는 듯하다. 필요하지만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SNS에 콘텐츠를 쌓아가는 이유 중 분명한 한 가지는 '퍼스널 브랜딩'이다. 브랜딩을 통해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나는 이것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런데 지인의 피드백을 듣고 보니 그동안 너무 내 이야기만 쏟아낸 건 아닌가 싶었다 독자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우선 다이어리를 꺼내 실천과제를 몇 가지 적어보았다. 가장 먼저 나의 콘텐츠를 다시 읽어 보는 것이다. 항상 글쓰기에 대해 '나의 순간을 기록하는 것'으로 여겨왔다. 지나가면 잊히는 순간들이 글 속에 남아 삶의 궤적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궤적을 읽어내기 위한 시간은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다는 것이 머릿속에 스쳤다. 때마침 콘텐츠의 방향을 고민 중이니 지금이야말로 나의 모든 기록을 꺼내 볼 때인 듯하다.
우선 책상 위에 놓인 노트 한 권을 펼쳐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거기에는 정확히 이렇게 쓰여있었다.
'짓'들...
보통 '~짓'이라고 하면 좋은 의미보다는 행위를 낮게 부르는 것을 뜻한다. 보통 '그 따위 짓'이라던가 '뻘 짓'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좋은 어감을 가진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오히려 '짓거리'에는 나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면 '짓거리'에 대한 핀잔을 더 많이 듣게 된다. 돈이 되지 않는 일, 시간 낭비와 같은 행동들, 업무 외적인 일들, 등 나의 필요가 아닌 남 또는 공동체의 필요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은 대체로 누군가에게 '뻘 짓'으로 쉽게 평가된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진짜 내가 바라는 것'에 대한 판단 근거조차 남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정말 한 뻘짓 한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이들의 하는 행동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정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오히려 아이들의 뻘짓은 그 자체로 존중받는다. 그런데 왜 어른들의 그것은 쉽게 폄하되어 마땅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일까.
생각을 달리 해보니 어느새 나도 나 스스로에게 그런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트에 적어 놓은 나의 '짓'들을 보니 제법 많은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이 보인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찾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한다. 그렇다. 나 역시 어느새 '짓거리'의 가치를 잃어버린 어른이 되어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짓거리의 효용은 시간과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심적 부담 또한 거의 없다는 점까지 더해보면 오히려 남는 장사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면 더더욱 '뻘짓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의 취향이 담긴 짓거리들을 기록하며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살펴보는 시간은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만약 오늘 나의 하루에 뻘짓이라고 불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후회와 반성보단 그 안에 담긴 나의 진짜 욕망을 살펴보자.
그 ‘짓’거리를 잘 쌓으면 진짜 나의 욕망이 담긴 ‘집’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