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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자의 서바이벌기

오랜만에 퇴사전문 작가 모드로 글쓰기

by 알레

얼마 전 대학 동기에게 오랜만에 메시지를 받았다. 근황을 주고받던 중 곧 이직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그 결정의 과정 동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겠다 친구야. 그런데 난 매일이 질풍노도의 시기란다' 속마음을 허공에 내던져보며 그저 고생했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퇴사 후 버티는 삶을 살아가는 일상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기에 어떻게든 살아는 간다. 속을 모르는 남이야 앓는 소리 한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내의 부족한 벌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근근이 살아간다. 그나마 있는 벌이도 수입과 지출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 여력은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내리막에 서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속도만 늦추고 있을 뿐.


브런치에는 여전히 퇴사 이야기가 많이 보인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퇴사를 선택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되든 안되든 나의 삶을 살아보고자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는 그들의 용기를 나는 누구보다 진실되게 응원해주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침울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도 꼭 알려주고 싶다. 제 아무리 심리적으로 바닥을 찍고 올라왔다 해도 안정된 무언가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진동은 계속된다.


퇴사를 선택할 때면 누군가는 신중하라 이야기할 것이다. 동의한다. 신중해야 함이 이성적으로는 옳다고 여겨진다.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게 기회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기에 삶의 거취를 옮길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사람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결국 이성이 아닌 감정이라고 하질 않던가. 그러니 감정을 건드리는 마케팅이 그렇게 잘 먹힌다고.


'퇴사'라는 단어를 가슴속에 떠올리는 순간부터 이미 당신의 마음은 저만치 앞서 나가있을 것이다. 행복한 삶, 진짜 나의 삶을 찾아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다는 부푼 희망을 가득 안은채 말이다. 그랬다면 누군가의 신중론은 다 부질없는 조언일 뿐이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조언일 뿐이다. 그래서 난 가슴을 따라 행동하는 당신에게도 동의한다.


잔뜩 부풀어 오른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이 어딘지도 모른 채 발을 옮긴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내 나이 마흔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은 걸음을 내디딘 사람을 그저 나락으로만 치닫게 하지 않음을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견딜 수 있는 것이고, 계속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며 나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퇴사의 이유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뚜렷한 대안이나 두둑한 자산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이후의 삶은 누구에게나 고민의 연속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막 그 길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후련함과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 보겠다는 다짐으로 에너지가 충만해 있을 것이고, 나처럼 1년이 넘는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미 그 사이 차디찬 시베리아 같은 마음부터 스스로의 쓸모에 대한 자괴감과 무너지는 자존감등 낙담의 골짜기를 제대로 경험해 봤을 것이다.


다행인 건 지금의 난 그 골짜기에서는 걸어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직 해결된 건 하나도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난 적어도 그곳에서는 걸어 나왔다.


퇴사 후 서바이벌을 해내려면 일단 매집부터 키워야 할 것이다. 언제 어떻게 두드려 광풍이 불어닥칠지 모르니. 적어도 매일 나의 마음을 긍정으로 채워줄 3가지는 만들어 두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당장 거창한 앞날에 잔뜩 마음을 두기보다 오늘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언젠가 당신도 겪어보면 알게 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잘 겪어내길 바랄 뿐이다.


혹여라도 오해할지 몰라 마지막으로 적어본다. 이 글은 퇴사자의 절망을 말하는 글이 아니라 희망을 주기 위한 글이었음을, 부디 나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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