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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y 09. 2023

삶이라는 유산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어머니께

삶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지금의 내가 이 시간,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도 거듭된 시간의 어느 선상에 서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아이에게 그것을 대물림하고 있는 중이다. 삶이라는 유산은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된다. 


가만히 나를 돌아본다. '나'라는 한 생명이 있기 전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어머니가 계신다. 고로 나는 두 분의 합 플러스알파다. 내 아이 역시 나와 내 아내의 합의 플러스 무엇이다. 우리는 이렇게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생'이라는 유산을 넘겨받으며 각자의 몫을 채워 나가고 있다. 


나는 늘 나를 탐구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나를 알고 싶은 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로부터의 단절이 인간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본능적 탐구가 일어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과연 내나 나를 전부 다 알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도 든다. 늘 한 사람을 우주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그렇다. 우주는 인간 지성으로 전부 다 이해할 수 있는 시공간이 아니기에. 그래서 나를 이해하기 위해선 나에게 삶이라는 유산을 물려준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두 분의 삶은 곧 나의 힌트이니까.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성실한 분이셨다. 아버지를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오면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정직하고 성실하며 따뜻한 감성을 가진 분이셨다. 어떤 때는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가슴이 더 따뜻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자라오면서 아버지와는 그리 가까웠던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 시작한 건 나 역시 가장이 되고 아빠가 되어서였다. 


그간 아버지께서 하신 선택들이 가장으로서 가족이 늘 최우선에 있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가족과 오랜 시간 떨어져 해외에 계셨던 시간도, 가족이 그리우면 그곳 어딘가 바닷가에 홀로 서서 노래를 부르며 그리움을 달래셨다는 그 말씀도 그 시간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선택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었음을 잘 안다.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이만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 그 덕에 내 아이는 아빠, 엄마와 더 풍요로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니까.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희생'과 '섬김'이라는 두 단어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삶은 그 자체가 섬김이었다. 간호사로서 노인들과 중증 장애인 분들을 정성스레 섬기신 분. 바로 그분이 나의 어머니시다. 지금 어머니는 그 삶을 이어가고 계신다. 힘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 당신이 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매일을 고군분투하신다. 


조금은 미련할 만큼 또 어떤 때는 워커홀릭처럼 보일 만큼 혼신을 다하는 어머니의 가슴에는 단순한 한 가지 의미만 담겨 있는 듯 보였다. 사랑. 어머니는 나와 내 형에게 신앙의 삶을 가르치신 분이시다. 삶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우리들에게 사랑과 섬김은 무엇보다 근간이 된다. 그것을 어머니는 교회 건물 안에서가 아닌 삶에서 실천하신 분이시다. 아니, 지금도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나. 두 분을 정말 많이 닮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내 안에 존재하는 성실함과 따뜻함. 두 분이 그렇게 살았기에,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한평생 보고 자랐기에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당연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 정도가 아닌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삶의 유산이었다. '나'를 이루는 나의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돌이켜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 같다. 나의 아버지는 기록하시는 분이셨다. 나와 형이 태어났을 때부터 얼마간 기록하셨다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기록은 늘 함께 셨던 것 같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며 쓰셨던 글. 한 권의 책으로 집필하셨던 아버지의 책. 이제는 내가 그것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가족이라는 가치를 배웠고 물려받았다.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고 자녀에 대한 희생의 숭고함을 깨달았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이해하지 못할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래서 지금의 나의 부족함도 한편으론 안심이 된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삶을 흘려보내고 있는 걸까. 자주 생각에 잠긴다. 나의 성장과 자리매김을 위한 지금의 애씀이 내 아이에겐 어떤 가치로 남겨질까. 그 의미를 자주 되묻게 된다. 


삶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의 생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허락된 시간만큼은 나에게 물려주신 부모님의 위대한 삶의 유산을 나의 아이에게 잘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져 갈 수 있기를, 그 바람을 여기에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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