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어린이집 가는 길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아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치겠네
장기하 <느리게 걷자>
아침 10시. 다른 친구들은 이미 어린이집에 가있을 시간. 내 아들은 잠시 동안의 실랑을 마치고 집을 나선다. 엄마 아빠의 마음이야 차로 얼른 데려다주면 간식이라도 먹겠지, 오전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겠지 싶어 차를 타고 갈 채비를 했지만 아이는 문 앞에 서서 외친다.
“신발!” “현호 신발!”
“현호야, 아빠 차 타고 슝- 얼른 가서 간식 먹고 친구들하고 놀아야지”
“아아아 아아아- 신발! 신발! 신발!”
“그래. 그럼 아빠랑 손 잡고 걸어갈 거야?”
“응!”
“그럼 엄마랑은 빠빠이 해”
“다녀오@&₩(/&-” (뭔가 다녀오겠습니다 와 다녀오세요가 섞인듯한 알 수 없는 표현이었다.)
다른 때면 어떻게든 차에 태워 갔을 텐데, 오늘은 그냥 아이와 걷고 싶었다. 아이 친구 아빠가 등 하원 길에 늘 걸어 다니며 아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올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솔직히 내 아이는 ‘과연 곧장 어린이집을 갈 것인가?’, ‘가다가 다른 데로 가자고 떼를 쓰면 어떡하지?’, ‘빨리 다녀와서 내 할 일 해야 되는데’와 같은 생각에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어서 등원하기를 오늘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아들과 아빠는 함께 길을 나섰다.
아이는 신이 났다. 엘리베이터를 타더니 구석에 서서 덩실덩실 엉덩이 춤을 춘다. 평소라면 절대 엄마를 두고 이빠하고만 가지 않는 아이가 흔쾌히 집을 나서다니. '걷는다는 게 아이에게 이렇게 신이 나는 일이었나'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생겼다.
몇 개월째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 돌이 되기 전, 이제 좀 잘 걷는다 싶을 무렵, 하원길에 걸어와본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 좀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걸어 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도 위에 쓰레기와 돌멩이, 껌자국 등 제발 만지지 말았으면 하는 오만가지에 손이 갔다. 먼지가 가득한 난간도 잡고 싶어 다가가니 돌아오는 길이 고난의 길이었다.
최근 하원길에 다시 아이랑 걸어서 집에 왔던 적이 있다. 28개월 아이는 어느새 부쩍 커서 아빠 손을 잡고 집까지 잘 걸어왔다. 집이 가까워질 즈음 아이도 힘이 들었는지, "힘들어", "안아줘"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얼른 안고 저벅저벅 걸어 집으로 왔다. 이때의 경험이 나름 만족스러웠는지 나에게도 과거와는 달리 아이와 함께 걸어 등원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첫 번째 위기는 아파트에서 나와 단지 내의 놀이터를 향하는 갈림길이었다. 아이는 온 힘을 다해 놀이터에 가자고 나를 잡아당겼다. '어쩌지?' 고민하다 반대편 (가야 하는 방향)을 가리키며 "현호야, 저-기 자동차 다니는 곳에 가볼까?" 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응! 가볼까?"라며 제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휴우-"
두 번째 위기는 개미다. 이 또래 아이들은 참 개미에 관심이 많다. 걷다가 "개미!"하고 멈춘다. 또 잠시 걷다가 다시 "개미! 개미!" 하며 발을 멈춘다. 그러기를 무슨 삼보일배하듯 했다. '뭐 이 정도는 그래도 귀엽지'라고 생각하며 멈춰 설 때마다 개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 번째 위기는 인도 위에 있는 가로수다. 가로수 아래 모래 바닥은 아이가 줍고 싶은 자잘한 돌멩이들로 가득하다. 솔직히 이곳은 손을 대지 않았으면 하는 곳이다. 이곳을 오고 가는 견공들의 해우소이니. 일전에는 이 코스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적이 있어서 나름 긴장하고 아이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현호야, 여긴 멍멍이들이 쉬- 하고 응-가 하는 곳이지? 지지니까 손대지 말자" "지지- 안돼-!" 아이는 참 대답은 잘한다. 오호, 근데 오늘은 대답만 하는 건 아니었다. 진짜 그냥 지나친다. 아니, 그냥은 아니고 발로 한 번씩 모래바닥을 긁어주며 지나갔다. (청소부 아저씨, 인도를 모래밭으로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 위기는 어린이집에 가기 전 통과해야 하는 놀이터다. 놀.이.터! 직전의 사거리에서부터 수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떡할까' 지난번 하원길에 힘들어서 안아달라고 했던 기억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나름 넓은 사거리였던 만큼 안고 건너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현호야, 여긴 넓고 차도 많이 다니는 곳이니까 초록불 켜지면 아빠가 얼른 안고 건널게." "응, 안아줘." 작전 성공! 그대로 어린이집까지 또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지막 위기를 잘 넘긴 덕에 등원길은 30분 컷으로 끝냈다. 다행이었다. 혼자 돌아오는 길 어쩐지 뿌듯했다. 뭔가 아빠로서 큰 미션 하나를 해낸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아이에게 제한을 했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신나서 걸어갔는데.
날씨만 괜찮다면 앞으로는 좀 더 아이와 걸어 다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제법 잘하는 아이 덕분에 걸어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쫑알쫑알 이야기도 나누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했다. 비록 느리게 걷긴 했지만 덕분에 가는 길에 강아지랑 인사도 하고, 길 건너 비둘기를 보며 반가워하기도 하고, 보도블록 틈 사이 올라온 노란 민들레 꽃을 감상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오늘 하루를 잘 보내준 아이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원길에 아이 친구와 함께 놀이터에 들렀다. 온몸을 꾸겨 넣어가며 아이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두 아들의 아빠 노릇을 하게 되어 허리가 좀 뻐근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행복이니까! 마음만은 즐겁다. 오늘 하루가 참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