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살아가는 삶을 기록합니다.

기억은 기록으로 통해 온전해진다.

by 알레
셔터를 누르기로 결심한 순간, 그 찰나의 인상을 담아보려 하지만 찰나를 담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찰나라는 것은 사진 한 장으로도 붙잡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어서였을까. 담아두고 싶은 순간은 어느새 지나가버리기 일쑤다. 놓치고야 만다.

마주혜 작가님의 글 <사진> 중에서


취미로 사진을 찍는다. 주로 아이의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데, 아이의 시간은 모든 순간이 찰나이다. 만약 예측할 수 없는 행동들과 표정, 그리고 표현들을 다 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아마 다움 카카오나 구글 급의 서버가 필요할지도.


아이와 함께하면서 정말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화가 나는 순간도, 짜증을 내는 순간도, 결국 아이의 웃음 앞에, 그리고 서럽게 우는 아이의 연약함 앞에 이내 무너지고 만다. 그냥 내 아이의 모든 것이 나에겐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고 그래서 담아낼 수 없는 찰나의 시간이라는 것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두고 싶어서 늘 스마트폰을 근처에 두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마저 내려놓게 된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느라 아이와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놓치는 것도 아까우니까. 기록되지 못한 시간은 아쉬울지 몰라도, 아이와 아빠 사이의 기억 속에 남겨진 행복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마주혜 작가님의 글에서 처럼 찰나라는 것은 사진 한 장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사진에 아무리 담아내려 해도 다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삶이지 않던가. 그러하기에 삶은 우리의 가슴속에 담겨야 한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그중에서도 가족과의 시간은 더욱 말이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다.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 새벽녘에 잠드는 일이 매일인데 잠자리에 들 때면 제 자리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 어느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옆에 누워 아이의 조심스레 아이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자그마한 손에 살포시 나의 손을 얹어 본다.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근심도 걱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행복만이 남아있을 뿐.


아이는 정말 신이 우리에게 보내준 가장 큰 축복이고 선물이다. 아이를 갖기까지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더욱 그렇다. 부모가 되기 전엔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희생이 가슴으로 와닿지 않았다. 자녀로서 한편으론 그저 내가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사랑이고 권리라고 여겼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마음을 분명히 안다. 자녀는 한 사람, 한 생명, 그 이상의 존재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다 주어도 모자란 그런 존재.


어쩌면 오늘의 이 글이 누군가에겐 아픈 마음을 더 찌르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간절히 원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분명 있을 테니. 돌아보면 우리도 그런 시간을 보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는 나에게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오늘뿐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돌아보면 우리는 늘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 같다. '순간'으로 표현되는 시간이 정확히 얼마간의 시간인지는 모르겠다만 그 짧은 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들어찬다. 그로 인해 때론 찰나를 헛되이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것을 붙잡아 두기도 한다.


나는 매일 그것을 붙잡아 두고 싶어 글을 쓰게 된다. 다 표현할 수도 없고, 그럴만한 재간도 없지만, 적어도 다시 꺼내본 글 속에는 순간이 고스란히 남겨지니까.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는 법이고 기억은 기록이 있어야 온전해지는 법이다. 사진에 다 담아낼 수 없는 오늘의 나를 이렇게나마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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